포세이돈, 1500억짜리 영상 '시각 대만족'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광경은 마치 실제 상황인 듯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다. 때로는 숨이 막힐 듯, 때로는 시원하다 못해 소름을 돋게 만들 지경이다. 더위를 쫓기엔 안 성맞춤이다. 12월 31일, 북대서양 한가운데를 항해 중인 초호화 유람선 포세이돈. 20층 규모, 13개의 여 객용 갑판, 800개의 객실을 갖춘 포세이돈호는 연말 파티로 북적인다. 마침내 새해를 맞이하는 팡파르가 울리고, 승객들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이지만, 그 순간 배 앞에는 47m가 넘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엄청난 파도에 배는 순식간에 침몰되고, 축제를 즐기던 배 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선장의 지시대로 구조를 기다리지만, 프로게이머 딜 런(조시 루카스)은 스스로 탈출하겠다고 나선다. 이에 배 안에서 잃어버린 딸 제니퍼(에 미 로섬)를 찾으려는 아버지 로버트(커트 러셀), 천재 소년과 그의 어머니, 밀항자, 실연을 겪은 게이 등이 딜런과 함께 탈출에 동참한다. 하지만 그들이 탈출하기엔 너무나 많은 난관이 버티고 서 있다. 영화는 재난과 탈출의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72년 작 '포세이돈 어드벤처'를 리메이크한 영화 '포세이돈'은 너무나 할리우드적인 '스펙터클 무비'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만이 구현할 수 있는 비싼 영상을 마음껏 보여준다. 너무도 뻔한 스토리를 다루지만, 거대한 영상은 이 '뻔함'을 상쇄하기에 충분하다. 22m 높이의 세트에 물을 가득 채워 만든 연회장과 엄청난 규모의 해일, 오프닝 장면에서 보여주는 포세이돈호의 전경 등은 1억5000만 달러 짜리 영화의 위용을 실감케 한다. 연출을 맡은 볼프강 페터슨 감독은 '트로이', '에어포스 원', '퍼펙트 스톰' 등 제목만 대면 알 만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거장. 이번에도 전작들처럼 '규모'에서는 충분히 압도적인 힘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 '가슴의 울림'을 유발하는 드라마가 없는 게 아쉽다. 물론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진한 부성애 등 나름 짠한 장면도 있지만, 평면적인 감정의 흐름에 그친 느낌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미국식 영웅 만들기'의 냄새도 살짝 풍긴다. 다만, 실연의 아픔으로 자살을 기도하던 게이가 생사의 기로에서 보여주는 삶에 대한 애착은 이 영화 속 드라마의 백미로 꼽힐 만하다. 어쨌든 '포세이돈'은 판단이 명확하게 설 수 있어 좋은 작품이다. '짧고 굵게'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려는 관객에게 이 이상의 영화는 없다. 98분의 러닝타임 역시 매력적이다. 100분 이상 보여주기에만 치중한다면 지루해질 법도 하지만, 딱 적당한 시점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골고루 만족감을 주기엔 좀 허전하지만, 시각만큼은 확실히 만족시켜주는 영화다. 31일 개봉.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