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이 영화가 칸 수상작 맞습니까?

정치영화의 거장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올해 칸영화제는 행복했다. 왜냐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으니까. 논공행상이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며, 특히나 칸영화제는 의외성이 강하다. ‘지옥의 묵시록’부터 시작된 그 논란의 역사.

‘지옥의 묵시록’(1979년, 32회) - 이 영화는 ‘양철북’과 공동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시상식이 끝나고 심사위원장이었던 소설가 프랑소와즈 사강은 폭탄발언을 했다. ‘양철북’의 단독수상이었으나 집행부의 압력으로 ‘지옥의 묵시록’도 “끼워줬다”는 것. 참고로, 당시 ‘지옥의 묵시록’은 완성된 버전이 아니었다.
‘올 댓 재즈’(1980년, 33회) - 대세는 ‘카게무샤’였다. 하지만 시상식 몇 시간 전, 심사위원들은 위대한 뮤지컬 한 편을 잊고 있었다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바로 ‘올 댓 재즈’(출시명은 ‘로이 샤이더의 재즈클럽’). 심사위원장 커크 더글러스가 자고 있을 때, 채플린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두 편의 공동수상을 결정했다.
‘엑스칼리버’(1981년, 34회) - 당시 유럽은 격변기였고, 안제이 바이다의 정치영화 ‘철의 사나이’는 대세 혹은 수순이었다. 하지만 마술적 영화 ‘엑스칼리버’ 앞에서 심사위원들은 망설였다. 결국 황금종려상에 준하는 ‘예술공헌상’ 부문을 신설해 ‘엑스칼리버’에 수여했다.

‘노스탤지어’(1983년, 36회) - 모든 심사위원들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심원한 세계에 매혹되었지만 단 한 사람만 예외였다. 골수 공산당원이었던 세르게이 본다추르크 감독은 ‘당의 배신자’ 타르코프스키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면 외교적 문제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가 트로피를 가져갔다.
‘아빠는 출장중’(1985년, 38회) - 알란 파커의 ‘버디’가 대세였지만 심사위원장 밀로스 포먼은 ‘집시의 제왕’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빠는 출장중’을 보며, 체코에서 미국으로 망명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버디’는 심사위원대상으로 “밀렸다”.

‘희생’(1986년, 39회) - 정녕 이 영화가 롤랑 조페의 ‘미션’보다 떨어지는 작품이란 말인가! 모두들 제작자 데이비드 퍼트냄의 로비 활동에 타르코프스키의 유작이 “희생”됐다고 수군거렸다. 그 해 겨울, 타르코프스키는 세상을 떠났다.
‘사탄의 태양 아래서’(1987년, 40회) - 상 주기에 마땅한 영화가 없었다. 심사위원장인 이브 몽탕은 고르다 지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주기로 했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그의 취향이 아니었던 걸까?
‘똑바로 살아라’(1989년, 42회) -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황금종려상을 탔지만, 영화제 내내 주목받았던 영화는 단연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였다. 하지만 냉담한 심사위원장 빔 벤더스는 ‘스파이크 리가 흑인과 백인 중 어느 쪽에도 가담할 용기가 없는 겁쟁이’라며 단 하나의 상도 주지 않았다.

‘바톤 핑크’(1991년, 44회) - 심사위원장 로만 폴란스키는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황금종려상은 당연했다. 여기에 폴란스키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까지 추가했다. 칸영화제 사상, 주요 부문에서 세 개 이상 수상한 건 ‘바톤 핑크’가 처음이었다.
‘폴라 X’(1999년, 52회) - 그해 칸영화제는 지루한 영화들 일색이었다. ‘로제타’가 황금종려상을, ‘휴머니티’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이때 심사위원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레오스 카락스의 ‘폴라 X’에도 뭔가를 주려고 했다. 안 그래도 영화제의 시장성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폴라 X’까지 가세한다면 이건 거의 사망선고였다. 집행부는 결사적으로 막았고, 다행히(?) ‘폴라 X’는 상을 받지 못했다.
(월간 ‘스크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