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표 무술감독 "마약같은 스턴트"

'무술감독', '스턴트맨'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98년 여름. 정두홍 무술감독 등 '1세대 스턴트맨'들이 의기투합, 서울 보라매공원 체육관에 '서울 액션스쿨'이라는 간판을 조그맣게 내걸고 더부살이를 시작했다. 그나마도 대한체육회 등을 찾아다니며 사정사정해서 마련된 보금자리였다. 그랬던 곳이 어느덧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액션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올 2월에는 강우석 감독의 배려로 경기도 파주 아트센터 내에 번듯한 건물까지 마련했다. 서울 액션스쿨의 전 대표를 맡기도 했던 이홍표 무술감독으로부터 그들의 땀과 눈물이 가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은 집으로 이사한 걸 축하한다. 시설이 참 좋은데. ▶말도 마라. 주민들의 반대가 너무 심해 이사도 못할 뻔했다. 아직 나이 드신 분들은 '스턴트맨' 하면 '깡패'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다. 액션스쿨이 온다고 했을 때 주민들이 '깡패 들어온다'고 엄청 반대했다. 어쨌거나 좋은 시설에서 운동할 수 있게 해 준 강 감독님에게 감사드린다. -학사과정(?)은 어떻게 되나. ▶지금 훈련받고 있는 수강생들이 10기다. 간단한 오디션이 있긴 한데 '아주 특별한 경우'(환상에만 빠져 짐 싸들고 상경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단다)가 아니면 합격시킨다. 교육 기간은 6개월이고, 기초체력 증진 훈련, 주먹 찌르기, 발차기, 검술, 우슈, 승마, 스킨스쿠버, 레펠, 와이어 액션 등을 가르친다. 교육시간은 오후 1시부터 5시까지인데, 이는 보라매공원 더부살이 시절 시간표가 굳어진 거다. -수강료가 없다던데. ▶전액 무료다. 승마나 스킨스쿠버의 경우 장비 대여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만 받는다. 운영비는 강사진 등 현직 무술감독들이 자신들의 수입에서 일정부분씩 십시일반해 충당한다. -수강생들 대부분이 나름대로 한 가닥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텐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운동에는 왕도가 없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 이긴다. 약간 운동신경이 처져 보이는 사람이 노력 여하에 따라 오히려 오래갈 수도 있다. -훈련과정이 혹독하다던데, 낙오자는 없나. ▶당연히 있다. 지금 훈련 중인 10기생도 원래는 36명이었는데, 지금은 20명만 남았다. 육체적인 제한은 없지만, 고통을 이겨낼 정신적인 자세가 안 돼 있다면 버텨내기 힘들다. -힘든 직업인데, 왜 굳이 스턴트를 하는지. 스턴트의 매력은 뭔가. ▶한마디로 마약과 같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두기도 하지만 곧 돌아오더라. 사실 우리도 무섭다.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릴 때도, '레디 액션' 신호가 나기 전까지는 너무 무섭다. 하지만 막상 큐 사인이 떨어지고 떨어지면 그 기분이란…, 그 성취감과 스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금 액션스쿨 식구가 56명인데, 이중 10여 명이 장애등급을 갖고 있다. 그래도 한다. 그게 스턴트의 매력인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혹시 불량배를 만난 적이 있는가. ▶우리는 불량배를 만나면 바로 도망간다. 지금까지 액션스쿨 식구들 중 사람을 때려서 말썽부린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가뜩이나 우리를 '깡패' 쯤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사고 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도망가는 게 편하다. (스포츠조선 파주=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