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06.05 23:27 | 수정 : 2006.06.05 23:42

전자랜드 8강전, 바둑계 대표 ‘性대결’
30여년 맞수, 역대 국수토너먼트 결승

두 판의 이색 대결이 이번 주 바둑계를 수놓는다. 하나는 이창호 대 조혜연 간의 제3기 전자랜드배 왕중왕 8강전(6일), 또 하나는 조훈현과 서봉수가 마주앉는 ‘역대 국수 토너먼트 결승전’(8일)이다. 앞은 현역 통합국수와 전 여류 국수가 최초로 펼치는 ‘성 대결’이란 점이 관전 포인트다. 조훈현·서봉수전은 이벤트성 행사지만 20년 가까이 타이틀 무대를 독점했던 양웅의 재격돌이란 점에서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두 대국을 관통하는 키 워드는 ‘국수(國手)’인 셈. 〈이창호 VS. 조혜연〉 조혜연(21)은 여성 바둑계에서 대들보 같은 존재다. 날카로운 수읽기와 섬세한 계산력으로 여류 국수 2차례, 여류 명인 한 차례를 지냈다. 그 과정에서 ‘여자 이창호’란 별명도 얻었다. 그런데도 ‘진짜 이창호’와 대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 정상 간 실력의 차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논리로 이번 첫 대결이 성사된 것도 여성 바둑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징표다. 루이나이웨이(43)가 국수 자리에 오른 바 있으나 이미 하향 커브로 접어들었다. 국가 단체전에 중국 선수로 출전하는 등 대표성도 떨어진다. 조혜연의 라이벌이자 ‘여자 유창혁’이란 별명을 가진 박지은(23) 역시 아직 이창호와 공식전을 가진 경험이 없어 이번 대결의 역사적 의미는 크다. 조혜연은 이번 이창호와의 대국에 이어 천원전에선 이세돌과 8강을 다툴 예정. 이세돌과는 다섯 판을 겨뤄 1승을 맛본 적이 있다. 골프나 테니스 같은 개인 스포츠에선 종종 ‘성 대결’이 이뤄지지만, 남녀 최정상이 엄격하게 동등한 조건으로 맞싸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분야는 오직 바둑뿐이다. 여대생 조혜연(고려대)은 과연 이창호를 만나 몇 라운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혹시 여자 쪽이 승리하는 경우가 나오지는 않을까. 6일 오후 7시 케이블 바둑TV에서 생중계한다.
〈조훈현 VS. 서봉수〉 ‘조·서’는 ‘공동 고유명사’다. 호칭을 공유한 커플은 세계 어떤 분야에서도 흔치 않다. 53세 동갑으로 73년 제1회 백남배 때 첫 대면 후 한때 독점적으로 모든 타이틀을 다퉈 온 둘 간의 판 수는 360국(조훈현 기준 243승 117패). 비공식 대국을 합하면 무려 374국째로,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를 맞아 싸운 301국(이창호 183승 118패)보다도 월등히 많다(2006.6.5일 기준). 단언컨대 지구상 모든 승부를 통틀어 특정 2인이 겨룬 최다 기록이다. 한쪽이 달아나면 또 한쪽이 쫓아가 발목잡고 늘어지던 세월. 그 피 어린 대결사는 한국 바둑을 몇 단계 끌어올려 훗날 후학들이 세계를 호령하는 거름이 됐다. 타이틀 무대에서만 69회(조 56, 서 13회 우승)나 부딪쳤던 둘은 95년 박카스배를 끝으로 ‘공동 주연’ 역을 내놓았건만 아직도 만나면 찬 바람이 인다. 지난 1월 전자랜드배 때도 둘은 복기(復棋)없이 일어섰다. 아직도 마음은 새파란 승부사요, 서로는 양보할 수 없는 숙적이란 뜻이다. 평생 타이틀 수는 조훈현 157, 서봉수 30개. 비록 비공식 대결이지만 결승은 결승이다. 이번 승리는 우승 횟수에 포함될 테니까. 허옇게 서리 내린 조훈현과, 중앙 공지(空地)가 더욱 넓어진 서봉수의 머리가 다시 바둑판을 덮을 이 대국은 8일 오후 2시부터 스카이TV 스튜디오에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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