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 '구미호 가족' 잠실 광나루 촬영장

'가족같이 지낼 서커스 단원을 모집합니다 / 외모, 집안, 학벌, 나이 상관없어요 / 호모, 전과자, 불법체류자 / 서커스를 못해도~ 월드컵 개막을 얼마 앞둔 초여름의 한가로운 오후, 잠실 광나루지구 굴다리에 때아닌 노래와 춤판이 벌어진다. 기묘한 의상을 차린 5명의 여우(구미호) 가족,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깬 노숙자들, 이들이 엮은 질펀한 한마당은 어지간히 생경했지만 그만큼 보는 이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구미호 가족'(감독 김형곤, 제작 MK픽쳐스)은 여느 영화 촬영장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귀를 간질이는 감각적인 노래, 우스꽝스런 동작의 군무가 말해주듯 '구미호 가족'은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엽기 코믹 판타지 뮤지컬 영화'를 표방하고 있다. 구미호 가족은 한날한시 인간의 간을 동시에 먹어야만 인간이 된다.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의 한국 버전. 자연스럽게 드라큘라 가족 얘기를 다룬 인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가 떠오른다. 이에 대해 김형곤 감독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사실 '구미호 가족'은 이미 시트콤이 시작되기 2년 전에 기획되었거든요. 비슷한 아이템을 먼저 쓴 건 할 수 없죠. 대신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 충분히 차별화될 거예요." 감독의 자신감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춤과 노래, 그리고 신랄한 풍자에서 나온다. 신구가 어우러진 구미호 가족은 면면이 개성에 넘친다. 코믹연기의 달인인 아버지 주현을 필두로 섹시 스타 박시연, '용서받지 못한 자'로 칸에 다녀온 하정우, '청연'을 통해 '리틀 장진영'이란 닉네임을 얻은 고주연이 3남매를 이룬다. 여기에 박준규가 박시연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가족의 사위 겸 인질 역으로 가세했다. 주현과 하정우의 '덤앤더머' 같은 부자연기는 단연 압권. 하정우는 "(주현)선생님의 애드리브를 따라가는 게 벅차다"며 촬영장의 재미를 털어놓는다.

이들은 춤과 노래 연습에만 꼬박 2개월을 투자했다. 굴다리 댄스 신에서 전문 춤꾼들과 역동적인 동작을 완벽하게 맞추는 것을 보면 연습량과 강도가 짐작된다. 촬영장 맏어른인 주현은 음악도 좋지만 영화의 묘미는 단연 풍자에 있다고 자신한다. "인간이 되기 위해 구미호 가족이 마음은 간절해요. 그래서 서커스 단원 모집으로 간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죠. 그런데 웬걸! 이놈의 인간들이 하나같이 썩어빠져서 먹을 간들이 없는거야. 영화를 보면 동물들이 보기에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지 깨닫고 돌아갈 거예요." '구미호 가족'은 한국 영화에 유례없는 실험을 하고 있다. 맛깔스런 음악과 율동, 강렬한 캐릭터, 드라마의 풍자 정신이 가미된 '구미호 가족'으로부터 70년대 '로키 호러 픽쳐쇼'와 같은 뮤지컬 컬트작의 탄생을 기대해봄 직하다. (스포츠조선 이재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