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메가폰' 여균동 감독, "제작비 3억 못구해 포기할뻔"

여균동 감독이 돌아왔다. '미인' 이후 무려 5년 만이다.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더니 "감독이 영화 구상 말고 뭐 할 게 있나"고 반문한다. 그를 5년간 옭아맨 작품은 '비단구두'. 제작비 3억 원의 초저예산 영화다. 2000년 '미인'을 개봉한 뒤 바로 착수했다는 여 감독은 "펀딩이 쉽지 않더라"며 몇 번이고 좌절한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비단구두'는 감독 자신의 설명을 그대로 빌리자면 고향이 개마고원인 실향민의 가짜 북한 방문기를 그린 블랙 코미디. 광화문 씨네큐브(22일부터)와 대구 동성 아트홀(26일부터), 전국 두 개 극장에만 걸렸다. 여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만든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소재인데 가장 비대중적으로 개봉한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5년 만에 돌아온 소감은 -영화 만드는 게 참 어려워졌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50줄을 바라보는 나이에(그는 58년생이다) 젊은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힘들어지니, 5년 만이라도 컴백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이제는 영화 좀 만들 텐데' 하는 친구들이 곁에서 도태되는 걸 지켜보며 아쉬워했다. ▶무척 오래 걸렸는데 -2000년 '미인'을 끝낸 직후 실향민 아버지를 둔 한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끌렸다. 처음엔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펀딩이 안되더라.(웃음) 2002년 초 기획을 끝냈는데 몇 번이고 엎어질 뻔했다. 개봉되는 것만 해도 참 행복인데, 시사회 때 전편을 처음 보고 나서는 '그때 좀 더 신경 써서 찍을 걸'하고 후회하고, 자학하고 있다. ▶가짜 방북기 주제는 '간 큰 가족'과 비슷하다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기획은 우리가 먼저 했는데. 그런데 '간 큰 가족'을 안 봤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많이 다르더라. 난 통일을 상대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치매에 걸린 실향민에게 개마고원과 강원도가 뭐나 다르겠나. 마음속의 통일이라도 그분의 한을 충분히 풀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 결말을 아이러니하게 구성한 건 결국 상실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무명 배우들의 연기력이 탁월한데 -대학로의 유명한 차이무 극단의 베테랑들을 섭외했다. 주인공인 민정기 화백은 서울대 재학 시절 미대 연극반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배다. 전시회를 끝내고 쉬고 계시기에 한번 하시겠느냐고 제의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예산이 적었기 때문에 크랭크인 전 2개월간 모두 모여서 연극식으로 연습했다. 덕분에 짧은 기간 안에 촬영을 끝마쳤다. ▶소위 독립 영화를 해보니 어떤가 실제 고생을 좀 했지만 이렇게라도 영화를 만드니 좋다. 3억원은 좀 적은 거 같고 한 5억원쯤 지원이 되면 계속 독립 영화에 매달릴 자신도 있다. 문제는 한정된 관객 층이다. 이런 영화들이 5만 명 정도는 들어야 한국 영화의 제작 시스템이 제대로 됐다고 할 수 있다. ▶차기작도 독립 영화인가 -빚도 졌는데 이젠 돈 좀 벌어야 되지 않겠나. 제대로 상업 영화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처음으로 남이 쓴 시나리오로 작업하게 됐다. 장르는 퓨전 사극인데 내용은 비밀이다.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 어디 주성치 같은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