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등에서 땀이 흐른다. 유난을 떨었던 황사 바람도 물러가고, 사무실 창문 너머 산에 신록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다. 6월이 온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삭막한 사무실에만 있는 것만큼 심한 고문도 없다. 적당한 핑계를 삼아 외근이나 가벼운 출장 스케줄을 짜서 밖으로 나가볼 일이다. 옷걸이에 걸어둔 파일재킷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이번 주말에는 가벼운 차림으로 산행을 해야겠다. 집에서 쉬고 계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해 함께 갈 수 있는 코스를 생각하며 출퇴근하는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닌가 한다.
가족캠핑과 고독한 클라이머를 위한 요리
이번 달에는 신록을 맞아 가족캠핑에 적합한 요리 하나와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해 친구들끼리 산에 다니는 고독한 클라이머들을 위한 요리를 각각 준비해 보았다.
먼저 소개할 버섯떡볶이는 가족캠핑 때 해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요리다. 저렴하고 간편한 재료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맛도 훌륭해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요리다. 특히 버섯요리를 싫어하는 아이들이나 치아가 시원치 않은 어르신들이 먹기에 좋다.
먼저 코팅된 프라이팬에 간 쇠고기를 올려 볶다가 고기가 반쯤 익었을 때 채 썬 양파와 고추를 넣는다. 그리고 양파가 익을 때쯤 물을 붓고 고추장을 푼 다음, 고추장이 다 풀리고 물이 끓으면 새송이를 1/4 등분해 준비했다가 떡과 함께 넣으면 된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점심이나 간식으로 먹기에 적당하다. 주의할 점은 조리기구로 코펠이 아닌 반드시 코팅이 잘 된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간편한 뒤처리를 위한 것이다. 코팅이 없는 코펠을 사용할 경우 요리과정에서 음식이 바닥에 눌어붙기 때문에 설거지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따라서 반드시 질 좋은 코팅 프라이팬을 준비하고, 조리하는 중에도 쉴 새 없이 저어주며 조리하기 바란다.
프라이팬은 넓은 것보다는 좁고 깊은 것이 좋다. 하지만 이 경우 자칫하면 프라이팬이 조리중에 엎어질 수 있으니 이것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한순간의 실수로 맛있는 요리가 처리하기 곤란한 흉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에 미지근한 바람이 솔솔 부는 캠프장에 빙 둘러앉아 사랑하는 사람의 입 주변에 묻어 있는 붉은 양념을 보면서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떡볶이를 다 먹고 난 후에는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먹어도 일품인데, 이때는 전날 저녁때 먹다 남은 상추나 김을 으깨 넣어 먹으면 좋다. 하지만 경험상 계란을 첨가해서 먹는 것은 별로인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맛도 없어지고, 모양도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이 날씨 좋은 5월에 고독을 즐기고 있는 클라이머들을 위한 요리는 표고국밥이다. 이것은 표고버섯이 많이 나는 산 아랫동네 식당에서 파는 것을 보고 생각해낸 것인데, 식당에서처럼 제대로 맛을 낼 순 없지만, 간편하게 훌륭한 맛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요리다. 5월이 최상급 표고의 수확시기인 점을 감안하면 이 달에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먼저 코펠에 국거리용 쇠고기를 올려 볶다가 간을 한 다음 고기가 80% 정도 익을 무렵 양파를 넣고 물을 붓고 물이 끓으면 즉석 육개장을 넣어보자. 즉석 육개장은 산에서 매운 육수를 내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재료다. 거의 모든 재료가 익었을 무렵 채 썬 표고버섯을 넣는다.
표고버섯은 어느 식품점에 가서도 구할 수 있는 재료인데, 최근 값싼 북한산 마른 표고버섯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을 더 내려면 생 표고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찬밥을 넣고 덩어리진 것을 풀어준 다음 중간 불에서 1~2분간 더 끓여주다가 졸기 전에 불에서 내려 먹으면 된다.
표고버섯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버섯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양의 특산물이다. 열량이 높고 단백질과 비타민이 많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요리재료의 인기스타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용했다고 하니 그 역사로 보면 가히 전통음식재료라고 할 수 있겠다.
영양학적으로 살펴보면 당질 중 레티닌을 비롯한 6종의 다당류가 들어있어 면역성을 증강시키고 항생작용을 하며, 에리타데닌은 혈압을 내려주고, 비타민D의 모체인 에고스테롤(ergosterol)이 들어 있어 칼슘을 흡수해 머리카락의 성장을 돕고 뼈와 치아를 튼튼히 해주고 골다공증까지 예방해 준다. 또한 콜레스테롤이 체내에 축적되는 것을 막아 주기도 한단다.
이론대로 생각하면 뚱뚱하고 대머리여서 아직 장가도 못 가고 산에만 다니는 여러 솔로들에게 반드시 권해줘야 할 것 같다. 표고는 기름기 많은 고기요리와 궁합이 잘 맞지만, 닭고기 호두와 함께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니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화학조미료 대부분 표고버섯 맛 흉내내
얼마 전 덕유산에 갔다가 구천동 입구 식당에서 표고국밥을 시켜 먹은 적이 있다. 표고버섯이 그 지역 특산품인지 어디를 가나 표고국밥이 메뉴판에 있을 정도였다. 보기에도 얼큰하고 맛나게 생긴 표고국밥은 역시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꿀맛과 같이 맛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 밥을 먹던 선배가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면서 하는 말.
“이거 완전 조미료 국이구만.”
아닌데, 하면서도 분위기 상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우리는 국은 한쪽으로 치우고 밥과 반찬만 먹고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식당 할머니가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집에 와서 알아보니 표고국밥에서 조미료 맛이 난 것은 바로 표고버섯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학조미료가 표고버섯 맛을 흉내낸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낸 것이다. 그러니 표고버섯이 푸짐하게 들어간 음식에서 조미료 맛이 날 수밖에. 유명한 식당이나 웰빙식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최상급인 표고버섯 가루를 천연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한다니 영양탕을 조미료탕으로 잘못 알고 먹지 못한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에는 그 식당을 다시 찾아 표고버섯 맛을 듬뿍 느끼고 와야 할 것 같다.
글= 한형석 한국산서회 회원 hshan@kolon.com
영양가 자문= 김소영 영양사 ksy0946@hotmail.com
사진= 조영회 인턴기자 choyoungho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