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6개의 고양이 눈을 그려 넣은 사내가 물살을 가르며 해변을 질주한다. 한때는 그를 추장으로 섬겼던 원주민들이 괴성을 지르며 떼로 쫓는다. 야비한 익살꾼, 미워할 수 없는 악당, 잭 스패로우(자니 뎁)가 돌아왔다.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6일 개봉)이다.
사실 할리우드로서는 족보도 애매한 성공이었다. 놀이공원 디즈니랜드의 작은 쇼에 불과했던 ‘캐리비안의 해적’이 스크린에서 무려 6억5000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기록하리라고는 제작사인 디즈니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1편(2003)의 빅히트 이후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더 록’ ‘블랙 호크 다운’등)와 감독 고어 버빈스키(‘캐리비안의 해적1’ ‘더 링’) 콤비는 한층 더 풍성해진 캐릭터와 액션으로 관객의 급소를 자극한다. 해적 선장 잭 스패로우의 개인기에 의존했던 게 1편 ‘블랙 펄의 저주’였다면 이번에는 귀여운 연인 윌 터너(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라 나이틀리)에게도 무게중심을 나눠준 게 특징. 또 해적선보다도 큰 문어 괴물 크라켄의 엽기적 비주얼과 10층 빌딩 크기의 물레방아 안에서 벌어지는 사내들의 결투는 절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만든다.
캐릭터와 액션에 힘을 쏟은 블록버스터인 만큼 드라마 구조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편. 핵심은 ‘망자의 함(函)’을 얻기 위한 사투다. 함 속에 들어 있는 건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의 괴물 선장 데비 존스(빌 나이)의 심장. 그 심장을 얻으면 바다의 지배자 데비 존스를 통제할 수 있는 파워를 얻는다. 데비 존스에게 영혼을 저당잡힌 잭은 물론, 동인도회사의 야심 많은 하수인 베켓 경(톰 홀랜더), 변치 않는 사랑을 꿈꾸는 윌과 엘리자베스 모두 ‘망자의 함’ 찾기에 혈안이 된다.
사회적 고민을 양념으로 첨가하는 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요즘 유행이지만, 이 여름용 팝콘 무비에는 최소한의 고민도 필요 없다.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 동안 모험과 사랑, 액션과 어드벤처를 즐기면 그뿐. 순도 100% 판타지의 쾌락이다. 단, 명심할 것. ‘망자의 함’은 3부작으로 제작중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제2편이다. 새로운 플롯이 시작되며 몰입하려는 순간, 어이없게도 영화는 막을 내린다. 투덜대도 소용없다. 내년 개봉예정인 3편 ‘세상의 끝’까지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