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한강에 수수께끼의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게다가 엄청난 특수효과가 필요한 ‘괴수영화’가 충무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은,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과감히 도전했고, 지금 ‘괴물’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낯선 영화 ‘괴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새로운 장르의 영화라는 것이다.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영화의 장르는 의외로 제한되어 있다. 로맨틱 코미디를 포함한 멜로드라마와 형사와 조폭이 등장하는 액션과 코미디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양산되는 공포영화. 그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스티븐 스필버그 덕에 80년대부터 공포영화, 모험영화, 괴수영화, SF, 판타지 등 갖가지 하위 장르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어린 시절의 꿈과 모험을 스크린에 옮겨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건 블록버스터의 공식이기도 했다. 그런 다양한 장르의 번식 속에서 할리우드는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점차 규모가 커지고, 시스템이 확립되어 가는 한국영화계에서 새로운 장르의 탐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로 멜로와 코미디 주변에서 머물던 한국영화가 새로운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이를테면 마이너한 감성을 담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대단히 기발하고 세련된 영화였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등 사이버 공간이나 시간 이동 등 특이한 소재의 영화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흥행에 성공했건 아니건 관객의 공감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괴물’은 다르다. 낯선 장르임에도 ‘괴물’은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블록버스터다. 아주 영리하게 괴수영화의 관습을 활용하면서도, 사회비판과 캐릭터 유머를 탁월하게 사용하여 관객을 쥐락펴락한다. ‘괴물’은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
‘괴물’이 단순히 스펙터클에 의존하는 괴수영화에 머무르지 않는 것은, 현대 가족의 위기상황에 대해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괴물’은 황당무계하지만, 결코 비현실적인 영화가 아니다. 괴물이 태어난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려보낸 독극물 때문이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임무를 가진 정부나 원인 제공자인 미군은 괴물 퇴치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미 일어난 재난을 은폐하고, 뭔가 이익을 찾는 것뿐이다. 그들은 이 사회의 권위적이고 부패한 ‘아버지’들이다. 정작 괴물을 물리치는 것은, 나약하고 초라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뭉친 소시민 가족이다. 어머니가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패배자 가족. 하지만 그들은 위기상황이 되자 하나로 뭉쳐 괴물과 싸운다.
‘괴물’의 설정은 지금 한국사회의 위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정부와 지배집단은 이미 신뢰를 잃었고, 몰락한 중산층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범죄에 빠져든다. 괴물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악과 부조리의 상징이다. 그래서 ‘괴물’은 말한다. 결국 무언가와 싸워야 하는 것은, 패배한 우리들 자신이라고. 가족을 지키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괴물’은 일깨워준다. 그 강렬한 메시지가 ‘괴물’을 보는 관객을 흥분시킨다. ‘괴물’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리얼함 때문이다.
(김봉석·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