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의 최다우승 기록 깨도 될까요?

“선생님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이크, 저 녀석 벌써 거의 다 쫓아왔네. 허허.” 세계 최고의 바둑 사제 조훈현(53)과 이창호(31) 간의 통산 타이틀 수 경쟁이 본격 점화됐다. 조훈현은 국내외 무대에서 무려 157회, 이창호는 131회에 걸쳐 정상에 섰다.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1, 2위 기록이다. 간격은 이제 불과 26개. 두 기사의 전성시기는 그들의 나이 차만큼이나 판이하다. 조훈현의 황금기는 77년부터 90년까지였다. 이창호는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절정기를 약간 지난 느낌은 주지만 여전히 국내외 1인자로서의 위엄을 지키고 있다. 2000년도에만 해도 151대 96으로 제자를 앞섰던 조훈현은 이후 단 6개를 추가하는데 그쳤다. 2003년 삼성화재배 이후엔 타이틀 추가가 단 1개도 없다. 반면 이창호는 5년 반 사이 무려 35개를 추가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창호가 조훈현을 따라잡을 날은 언제쯤일까. 이창호의 최근 페이스가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는 2002, 2003년 각 7개의 타이틀을 획득한 뒤 2004년 5개, 2005년 4개 등 퇴조 기미를 보이는 듯하다가 최근 다시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다. 올해 벌써 4개 기전을 제패해 연말이면 6개 안팎, 잘 하면 그 이상도 가능해 보인다. 국제대회 개막 때마다 ‘우승 후보 1순위’는 여전히 이창호다. 그 역시 뛰어난 후배들로부터 추격당하고 있지만 이런 페이스라면 대략 5~6년 안에 스승과 어깨를 견주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조훈현의 타이틀 수를 상수(常數)로 고정시켜 놓을 수는 없다. 일본 바둑계의 ‘괴물’ 후지사와(藤澤秀行)는 66세, 구토(工藤紀夫)는 57세 때 타이틀을 땄다. 천부의 기재(棋才)에다 뛰어난 체력까지 갖춘 조훈현은 아직도 타이틀전 일선에서 젊은이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줄 버디’ 행진을 펼치던 옛날로 회춘(?)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조훈현은 전성기 14년 간 치러진 146개 기전 중 110회를 우승, 당시 우승 점유율이 75.3%에 달했다. 이창호가 최고조였던 93년부터 99년까지 131개 대회에서 75회를 석권할 때 올린 57.3%를 압도한다. 하지만 국제대회가 90년대 이후 본격화됐고 국내 무대의 ‘난이도’ 역시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대신 타이틀 수는 ‘조훈현 시대’에서 ‘이창호 시대’로 넘어가면서 꾸준히 늘었다. 양웅의 우승 횟수를 단순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는 뜻이다.
기전(棋戰) 숫자는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전망인데 이것 역시 이창호의 ‘스승 빨리 따라잡기’에 유리한 변수다. 단체전, 여성 기전 등을 뺀 국내 타이틀전 수는 지난해 13개에서 올해 16개로 늘었다. 국제 무대 역시 지난해 성인 남성 개인전 결승만 무려 8개가 열리는 최대 성황을 이뤘었다. 세계 승부 역사상 최강의 ‘사제 라이벌’로 꼽혀온 조훈현과 이창호. 이 기이한 커플은 각종 기록 경쟁에 이어 통산 타이틀 수에서 또다시 숙명적인 ‘연장전’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