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배우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한다

아주 건조하게 이야기한다면, 클로즈업은 피사체에 카메라를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얻어지는 효과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다. 특히 배우의 얼굴을 담은 클로즈업은, 두 시간의 러닝타임으로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순식간에 관객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문법의 기틀을 마련했던 데이비드 W. 그리피스 감독이 릴리언 기쉬라는 위대한 피사체를 대상으로 클로즈업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인상적인 화면을 발명하고, 소련의 영화천재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속에 그 강렬한 클로즈업이 등장한 이후, 긴 세월 동안 감독들에게 이만큼 애용되고 또 남용되었던 테크닉은 없을 것이다. 가끔씩은 호러 퀸의 공포에 질린 얼굴이나, 에로 영화의 흥분 상태 여배우를 가득 채운 화면이 그 뻔한 의도 때문에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은 관객에게 그 어떤 컴퓨터그래픽이나 스펙터클 액션보다 강한 비주얼로 기억된다.
감독들은 흔히 편집에서의 기능적 이유 때문에 클로즈업 촬영을 하기도 하지만, 배우가 지닌 독특한 인상과 표정은 의도하지 못했던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의 얼굴’이라는 책에서 자크 오몽이라는 이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클로즈업은 하나의 얼굴인 세계 속에 우리를 투영하고, 또한 거꾸로 우리 안에 그 세계를 투영한다.” 클로즈업된 배우의 얼굴은, 한 편의 영화가 구축한 소우주를 관객과 연결시키는 코드인 셈이다.
수많은 배우들에게 다양한 강점이 있겠지만, ‘클로즈업이 좋은 배우’만큼 매력적인 연기자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은 그 매력의 신봉자인 듯한데, 이른바 ‘복수 3부작’은 ‘클로즈업 3부작’이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배우의 얼굴을 파고든다. 죽은 딸의 시체를 확인하는 송강호(복수는 나의 것), 복수심과 광기로 가득 찬 최민식(올드보이), 무표정으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던 이영애(친절한 금자씨)는 한국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클로즈업들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개봉한 ‘각설탕’은 ‘동안(童顔)의 스펙터클’을 내세운 영화다. 임수정과 아역배우 김유정의 왠지 모르게 닮은 얼굴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데, 그들의 얼굴은 잠시나마 영화의 스토리마저 잊게 하는 초시간적인 힘이 있다. 특히 아역배우들의 얼굴은 관객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는데, ‘집으로’의 유승호를 떠올린다면 무슨 뜻인지 잘 아실 듯하다. 이런 힘을 소유한 또 한 명의 배우는 바로 문근영. 그녀의 클로즈업엔 단지 “예쁘다”고만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을 끄는 그 무엇이 있다.
주름진 얼굴의 매력 또한 만만치 않다. 그 표정은 찰나의 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한다. ‘킬리만자로’에서 안성기가 영화 막바지에 보여주는 표정은 한 배우의 진정한 ‘쌩얼’이다. 이 영화의 비장미 넘치는 엔딩은 안성기의 주름 없이는 불가능했으며, 그 클로즈업엔 수십년 동안 광대로 살아왔고 ‘국민배우’라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아야 했던 한 인간의 인생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인상적인 ‘클로즈업 페이스’가 있다. ‘파이란’의 눈물 흘리던 최민식,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묻던 송강호와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표정을 지었던 박해일, ‘공공의 적’의 까칠한 설경구, 그리고 ‘오아시스’의 문소리와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나쁜 남자’의 조재현과…. 하지만 가장 최근, 나의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클로즈업은 ‘괴물’의 고아성<사진>이다. 난 이 영화에서 단 한 가지만 보라고 한다면 괴물보다는 고아성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선택하겠다. 그 아이의 얼굴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야기해준다. 어떨 땐, 강한 카리스마를 느낄 정도로.
(월간 ‘스크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