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없는 것들', 마음 약한 킬러 웃기기까지

도발적인 제목이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예의없는 것들'(감독 박철희, 제작 튜브픽쳐스)?. 거 참, 예의없게시리…. 킬러가 있다. 진한 곱슬머리에 시꺼먼 선글라스, 가죽 옷을 입은 도시의 사냥꾼. 가슴을 관통할 것 같은 크고 날카로운 칼로 청부살인을 저지른다. 그러나 이 킬러, 왠지 어설프다. 살인의 장면이 잔인하기 보다는 애절하고 우습다. 아마도 선글라스 밑으로 엿보이는 그의 하얀 미소 때문이 아닐까? 이름이 '킬라'(신하균)다. 청부살인업자 이름 치곤 가볍다. 역시나 마음도 약해 보인다. 살인을 하고난 후 피냄새를 지우기 위해 독한 위스키를 마실 만큼 가슴이 여리다. 술집의 좋아하는 여자(윤지혜)에겐 제대로 말도 한번 못 건넨다. 게다가 혀가 짧아서 말을 잃은 벙어리란다. "이거, 킬러 맞아?" 그래서 영화는 칼과 피가 난무하는 느와르지만 코미디가 강하다. 사람을 죽여도 웃음이 먼저 나오고, 그의 어눌한 행동에 실소가 연발한다. 내레이션도 코미디를 증폭시키는데 한 몫한다. '말없는' 주인공을 대신해 '마음 속의 화자'가 능수능란하게 말을 쏟아낸다. 그런데 이게 상황을 더 웃기게 만든다. 킬라가 그녀와 관계를 갖기 전에 그녀가 물을 먹이자 "소 잡기 전에는 물을 먹인다는데…"하는 것이나, 술에 취해 "너는 내게 고통이야"라고 울부짖는 그녀에게 "너는 내게 고민이야"라고 응수하는 게 그렇다. 카리스마와 코미디, 한(恨)을 동시에 담은 킬러는 신하균이 맡았다. 그는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입은듯 신들린 연기로 킬러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냈다. 칼과 총을 들고도 그만큼 선량해 보이는 킬러는 이제까지 없을 듯. 다만 '복수는 나의 것'(2002년), '지구를 지켜라'(2003년), '우리형'(2004년)에 이어 줄곧되는 '핸디캡이 있는' 캐릭터가 혹시 그의 연기적 변신을 고착화시키는 족쇄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는 남는다. 영화에서 말하는 예의없는 것들은 이 세상과 격리되어야 할 쓰레기 같은 존재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만 강한 사람, 막말해놓고 10분 뒤에 장난치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사람, 또는 정-재-교육계에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지도층일 수 있다. 킬라는 이런 예의없는 것들에게 거침없는 해결사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 칼날은 관객을 향할 지도 모른다. 나도 혹시 그런 예의없는 것들 중의 하나는 아닐까? 24일 개봉한다. 18세 이상 관람가다. (스포츠조선 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