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 "내 영화는 쓰레기… 영화계 떠나겠다"

‘한국 영화계의 이단아’로 불려온 김기덕(46) 감독이 지금까지의 자신의 영화 작업을 “쓰레기”라고 자평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김기덕 감독의 이같은 발언은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흥행 중인 영화 ‘괴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논란에 휩싸인 뒤 나온 발언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김 감독은 21일 오전 연합뉴스에 보낸 ‘김기덕의 사죄문’이라는 장문의 이메일에서 지난 17일 출연한 MBC 100분 토론에서의 발언에 대해 “과장된 이중적 언어로 시청자를 조롱한 행위도 죄송하다. 특히 ‘괴물’을 아끼시는 관객에게 깊이 사죄하며 ‘괴물’의 제작진, 봉준호 감독님에겐 정말 영화계 선배로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발언을 한 것에 진심으로 용서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토론에서 ‘한국영화와 관객의 수준이 최정점에서 만난 영화가 괴물’이라는 이전 자신의 발언이 논란 중인데 대해, “(인터넷에 오른) 4000개의 댓글이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자기 열등감을 심하게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네티즌을 직설화법으로 비난했다. 그는 또 “한 순간의 호기는 아니다. 지난 9년간 심각하게 생각해 앞으로는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김감독은 이메일에서 “언젠가 배우 안성기님에게 제 영화 ‘사마리아’의 아버지 역을 부탁했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 죽이느냐’며 거절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제가 영화를 구성하는 사고방식에 심각한 의식장애가 있음을 알았다”며, “모두 감추고 싶어하는 치부를 과장해 드러내는 저 자신의 영화가 너무 한심하고… 맛있게 먹은 음식이지만 똥이 되어 나올 때 그 똥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영화를 만들어 온 지난 시간이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김감독은 또 “이번 사태를 통해 제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가기 힘든 심각한 의식장애자임을 알았다”며 “저야말로 한국사회에서 기형적으로 돌출해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임을 알았다”고 자학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모두 ‘쓰레기’라 칭한 후, 최근 시사회를 가진 신작 ‘시간’을 개봉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메일 마지막 부분에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 관객의 진심을 깨닫고 조용히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오전 10시 이메일을 받은 연합뉴스 기자는 “감독의 발언이 격앙된 듯하여, 괴물에 대한 사과 부분만을 기사화했으나, 감독이 두 번이나 메일을 더 보내 “내 영화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영화계를 떠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시해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김 감독은 착신거부를 요청,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상태다.
김기덕 감독은 200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같은 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빈집’으로 각각 감독상을 수상하며 유럽 평단으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한국 영화계와는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김기덕 감독은 ‘활’을 “영화 평론가나 기자도 영화를 비판하려면 돈 내고 극장에 와서 보고 하라”며 시사회 없이 극장 한 곳에서만 개봉했고, 신작 ‘시간’도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가 주위의 만류로 번복했다. 김감독으로서는 외국 평단의 열광에 비해, 한국 평단이나 관객의 평가나 반응이 야박하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지인들의 분석. 김 감독의 이번 선언이 열정적인 감독의 자기 반성인지, 다양한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 영화문화에 대한 반발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