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맛따라] 호반에서 맛보는 안성맞춤 먹거리

생각한 대로 튼튼하게 잘 된 물건이나 제 때에 들어맞게 잘 된 일을 두고 하는 말 ‘안성맞춤’의 안성은 경기도의 지명 안성(安城)이다. 옛부터 안성은 놋그릇(유기·鍮器)의 명산지로,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들어 낸 안성 놋그릇이 전국으로 팔려 나갔고 그 명성은 널리 퍼졌다. 이런 유래로 ‘안성맞춤’은 보통명사가 된 지 오래이고, 현지 안성에서는 ‘안성맞춤’을 안성의 자랑, 안성의 명품으로 브랜드화 했다.

2002년 산업자원부가 주관한 전국 브랜드 경진대회에서는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안성맞춤’ 브랜드를 출품, 수상의 경력까지 갖게 되었다. 안성시는 생산되는 농축산물을 중심으로 ‘바른 먹거리의 새 이름 안성맞춤’이라는 구호를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크게 얻고 있다. 안성맞춤 심벌마크는 마패를 형상화한 것인데, 관원이 공적인 업무로 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 역마(驛馬)를 징발할 수 있는 증빙으로 사용하던 패다.

안성에서는 안성맞춤 포도, 안성맞춤 쌀, 안성맞춤 인삼, 안성맞춤 배, 안성맞춤 한우 이상 다섯 가지 농축산물에 안성맞춤 유기를 포함시켜 안성의 여섯 가지 보배인 안성6보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 안성사람들의 안성6보에 대한 자랑과 긍지는 대단하다.


호수의 도시 청룡호수 ‘호반가든’

안성에는 유난히 호수가 많다. 감히 ‘호수의 도시’라 할 만하다.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과 충청권 낚시꾼들에게 대단한 인기인 고삼호수와 금광호수가 안성에 있다. 금광호수를 끼고 산림이 우거진 도로변을 따라 진천 방향으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이고, 이른 아침 고삼호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실로 환상적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서운산을 오르는 산행코스의 첫 나들목 청룡사 가는 길에는 청룡호수도 있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수상스키와 모터보트까지 즐길 수 있는 청룡호수는 맑은 물이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도 유명하다. 청룡사 앞쪽 1km쯤 되는 이곳 호반에는 50여 가구 150여 명이 살고 있는 서운면 청룡리인데, 식당 6곳과 카페 4곳이 문을 열어 놓고 손님들을 반긴다.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계곡가의 ‘호반가든(031-672-9090)’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유연숙씨(44) 2대가 38년 전통을 잇고 있는 토박이 식당이다. 옥호 ‘호반’이 말해 주듯 호수에서 잡아 올린 민물새우로 매운탕을 끓여내는 집으로, 삼복에는 계곡가의 넓은 식탁을 차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소문난 식당이고 보면 민물새우매운탕 맛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4인분 30,000원. 토종닭백숙 30,000원).

방 4개로 민박손님도 받고 있는데 높은 인기로 예약 없이는 방 차지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차공간을 넉넉하게 확보해 놓았다.


호숫가의 자유와 사랑 카페 ‘타라 TARA'

서운산과 이어지는 남쪽자락에는 고려 때 지은 절의 잔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절 청룡사가 있다. 안성에서 청룡사로 가는 길, 안성시 서운면은 알이 검붉은 거봉 포도의 주산지로 일대가 온통 포도밭 천지다. 한 여름 탱탱하게 잘 익은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풍경은 청룡사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싱그러운 풍경이다.

고려 말 나옹 스님이 청룡사를 중창하면서 한 마리 푸른 용이 오색 찬연히 빛나는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는 서운산(瑞雲山) 청룡사(靑龍寺)로 작명했다고 한다. 구불구불한 노송의 자연목 기둥의 대웅전은 보물 제8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룡사는 남사당패의 본거지로 알려져 있는 절이기도 하다. 전국을 떠돌던 남사당패는 겨울을 나기 위해 이 절에 모여들어 절의 허드렛일을 거들며 고단한 삶을 잠시 쉬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또 다시 안성장터를 비롯,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희를 팔고 서민의 애환을 달래 주었다. 지금도 개울 건너편에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남사당마을이 남아 있다. 그리고 청룡사에서 멀지 않은 곳, 초입에는 남사당을 예인집단의 최고봉으로 끌어 올린 바우덕이의 묘가 있다. 바우덕이는 꽃처럼 바람처럼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젊은 여자 꼭두쇠였다.

청룡사로 가고 서운산을 오르는 길, 청룡호수 상류쪽 길가에서는 허름하게 느껴지는 작은 카페 하나를 만날 수 있다. 카페이름이 ‘타라(TARA·031-673-5871)'다. 이름이 이채로워 주인 이수용(60)씨에게 뜻부터 물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주인공 스칼렛의 고향목장 이름이라고 했다. 그 목장에서는 자유와 사랑을 느끼게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건네받은 명함에 찍힌 사진에 이해가 갔다. 영화속 한 장면인데 주인공역 클라크 게이블과 카페의 주인 인상이 빼닮았다.

카페에는 작은 테라스가 딸렸고, 길 건너편으로는 청룡호수가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그대로다. 넓지 않는 작은 마당은 파란 잔디가 깔려 있어 맨발로 밟고 싶은 충동을 일게 했다. 실내 한 켠은 작은 스테이지로 몇 가지 악기가 놓여 있다. 누가 와서 연주를 하느냐고 물었는데 답은 뜻밖이었다. 주인 자신이 그 악기들로 음악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은 젊은 날 서울의 고등학교 교단에서 젊음을 불살랐던 선생이었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산행을 마치고 하산길에 이런 분위기의 작은 카페에서 호수를 내려다보면서 차 한 잔 마시고 맥주 한 잔이라도 걸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잔잔한 작은 행복의 하나이겠다.


안성마춤 쌀밥집 ‘금산정’

식도락가가 아니더라도 안성에 가면 전국 최우수 브랜드 쌀로 선정된 안성맞춤 쌀밥을 먹어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 되겠다. 안성시는 고품질의 쌀 생산을 위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영농전략을 펴고 있다. 2001년부터 전용 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점토나 유기물 함량이 우수한 우량토질만을 골라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엄격히 관리된 우량종자를 작목반에 공급하고, 재배된 쌀 가공과 저장, 저온창고 건립 등 시설현대화를 마무리, 품질관리시스템도 완성했다.

이러한 정성과 노력으로 생산된 친환경적인 안성맞춤 쌀은 밥맛이 좋고 쌀알이 고른 품종으로 널리 알려진 추청벼(일명 아키바레)다. 밥이 윤기가 선명하고 맛이 뛰어나 2002 FIFA 월드컵 선수단의 공식 쌀로 지정되었던 사실만 보더라도 그 명성은 여론의 여지가 없겠다.

안성 중심가에서 10분 거리, 미양면 보체리에는 시지정 모범음식점인 안성맞춤 쌀밥집 ‘금산정(031-677-3737)이 있다. 아름다운 조경의 넓은 공간에 깔끔한 분위기의 집으로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수준으로 가꾸어 놓았다. 안성사람들이 외지 손님들을 안내하는 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음식맛이야 기본이겠고, 안주인 송미령씨(41)의 손님들에 대한 지극정성과 종사자들 모두가 친절한 것도 이 집을 단골로 찾는 요인의 하나라고 한다. 15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주차공간이 넉넉하다. 쌀밥정식 10,000원.

새로 떠오르는 ‘대한민국 술박물관’

스무 살 나이에 3.1 독립선언서를 영역해 해외에 보내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는 논개의 높은 절개를 노래한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 선생은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을 남겼다. 명정의 명은 술 취할 명(酩)이고 정 또한 술 취할 정(酊)이다. 그러고 보면 명정 40년은 ‘술 취하고 술 취한 40년’이라는 뜻이겠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 보면 몇 날 며칠 밤을 앉은 자리에서 꼬박 새우며 술을 마셨다는 얘기부터 배꼽을 잡고 웃어야만 할 술 취한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월간山에 등장하는 ‘악돌이’도 이제 40의 나이에 육박하는데, 돌이켜 챙겨보니 어느 한 달 술 마시지 않은 달이 없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나흘동안 안성땅을 헤매다가 마지막 날 우리는 ‘대한민국 술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술독으로 빠져들었다. 술박물관이라는 술독에서 자꾸 떠오른 인물이 바로 수주 변영로 선생과 악돌이 박영래 화백이었다.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는 대한민국 술박물관은 서운산의 북쪽 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는 곳 313번 지방도 변에 있다. 국호 대한민국을 술박물관 이름으로 쓰고 있다기에 첫 느낌은 지나치구나, 건방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지만 박물관을 둘러보고 박영국(朴泳國·51) 관장을 만나 보고서는 금방 경솔했음을 뉘우쳤다.

슈퍼마켓과 술 도매점을 운영하며 술에 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박 관장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스스로 무엇 한 가지라도 남겨야겠다는 신념에서 23년 전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버려진 양조장이나 고물상을 닥치는 대로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다녔다. 고물상에서 술병 하나 찾으면 2~3일 일 도와 주고 그 병을 받아 왔다고 한다. 남들이 하찮게 보는 병마개 하나 얻으려 외진 시골을 찾아가느라 10만 원 정도의 교통비를 뿌린 경우는 부지기수로 꼽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에게 지금은 전국 각지의 고물상이 자료수집의 창구가 되어 있고, 돈독한 친분을 쌓게 되었다고도 한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한 그가 이제사 독특한 형태의 2층 건물에 박물관 문패를 걸었다. 하산길이 아니더라도 한 차례 귀한 시간을 내어 찾아가볼 만한 새로운 명소인데, 어느 날엔가 박물관의 한 코너에는 ‘명정 40년’과 ‘악돌이’가 한 자리를 차지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마둔호수가의 참붕어찜 ‘쌍둥이네’

서운산 북쪽 자락에는 신라 문무왕 20년(680년) 고승 담화법사가 창건한 석남사가 있다. 석남사는 고려 때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가 크게 중수하여 수백 명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안성사람들은 서운산을 오를 때 청룡사나 석남사를 산행들머리로 하는데, 두 곳 어느 쪽에서나 정상까지는 1시간을 잡고 있다.

안성시내에서 석남사로 가는 길(313 지방도)에는 아름다운 저수지 마둔호수가 있다. 이 호수의 상류지점 길가에는 안성 일대에서는 꽤나 알려져 있는 참붕어찜 전문점 ‘쌍둥이네(031-676-1922)’가 있다. 식탁에 앉아 창밖으로 내다보는 마둔호수의 경치에 매료되어 서울을 위시해 먼 곳에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 집주인의 자랑이다.

참붕어찜 1인분 10,000~13,000원. 메기찜 1인분 8,000원. 매운탕 25,000~35,000원. 6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승용차 10대가 주차할 수 있다.


산속의 별천지 ‘안성마춤 한우촌’

안성맞춤 한우는 송아지로 태어날 때 고유의 ID를 부여받는다. 과학적인 사육시스템에 의해 자라는 전 과정이 데이터화되고 국제적인 규모의 최첨단 도축가공시설을 갖춘 안성축산물종합처리장에서 도축, 가공되어 소비처로 공급된다. 모든 공정이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품질도 최고로 보증받는다는 것이다. 사육농가와 사육방법, 그리고 유통과정을 소비자에게 공개하는 소고기 이력추적시스템을 도입해 놓았다. 실로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쇠고기가 바로 안성맞춤 한우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각별한 조치의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안성맞춤 한우는 2003년 농림부 축산브랜드 1위를 차지했다. 안성시 삼죽면 미장리에는 안성맞춤 한우 전문점 ‘안성맞춤 한우촌(031-673-5550)’이 있다.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도 늘 문전성시로 만원사례라는 것이 그 명성을 잘 대변해 준다. 경기도 10대 음식점에 들어가는 식당으로, ‘2006 맛깔스런 경기으뜸음식점’으로도 선정되었다.

이 식당의 안성맞춤 한우는 ‘약전(藥田)한우’라고 하는데, 자가목장에서 자체 개발한 약제가 들어간 사료를 먹여 사육한 암소다. 약전한우는 연암축산대학과 연계하여 육질을 계속 연구개발하고 고기는 식당으로 바로 공급하거나 대형 백화점 등에 납품하고 있다.

생등심 1인분 150g 35,000원, 생갈비 1인 2대 35,000원으로 고가이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모처럼의 기회를 잡아 찾는다고 했다. 한옥 2층의 우아한 건물 속 식탁에 앉아 창밖의 짙은 녹음을 내다보면 이곳은 분명 별천지다. 1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규모에 주차공간도 넉넉하다. 안성시내 인지동에는 ‘약산골(031-674-1771)’이라는 우탕 전문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며느리 3대 80년 전통 동아리국집 ‘안성장터’

참으로 보기 드문 경우의 식당이다. 안성시 도기동 23번 국도변에 있는 ‘안성장터(031-674-9494)’가 바로 그 집이다. 안주인 김금분(53)씨의 89세 시어머니가 19세 때 시집 왔을 때가 1930년대였는데, 그 때 시할머니께서는 동아리국밥 장사를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동아리국밥이란 동아리에 국을 담아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국 사시오 국”을 외치며 하는 장사라고 한다. 이후, 해방이 되고 안성 싸전거리 장터 한 귀퉁이에 가마솥을 걸고 장터국밥을 팔았다는 것이다. 6.25 피난에서 돌아와 비로소 창전동에다가 ‘안일옥’이라는 옥호를 걸고 국밥장사를 한 것이 오늘의 ‘안성장터’의 80년사라는 설명이다.

젊은 세대가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지고 옛맛을 외면하는 시대의 흐름이지만 ‘안성장터’는 고집스럽게도 다루기 힘든 가마솥으로 국밥을 끓여낸다. 옛맛을 그대로 재현시켜야만 한다는 장인정신의 발휘라고 했다. 지금 안성시 중심가 국민은행 옆에 있는 ‘안일옥’은 ‘안성에서 제일 편안한 집’이라는 뜻으로 처음 내걸었던 옥호였다는데, ‘안성장터’의 주인 김종안(54)씨 아우 내외가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넓은 마당에는 2,000명분의 장터국밥을 끓일 수 있는 실용의 가마솥이 걸려 있다. 주인 아들은 ‘안성장터국밥’ 4대를 잇겠다는 의지로 지금 요리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장터국밥 5,000원. 10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식탁에 주차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다.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경북대 산악회 OB 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