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낙지 科’

〈제9보〉(126~140)=한국 바둑계에 조치훈이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코흘리개 시절 도일한 그는 세계 종주국 행세를 하던 일본을 석권했고, 그때부터 한국 바둑도 공전의 붐을 맞으며 일본을 추월하는 계기가 됐다. 아직도 또렷한 우리 말을 구사할 만큼 민족의식이 강한 조치훈. 그러나 한국 기사들을 상대로 한 전적 24승 31패는 뜻밖이다. 낙지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영양분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글쎄, 왜 그 얘기가 떠올랐는지….
백도 하변이 고립된 상황. 126으로 우변과 연결하려는 것은 참고 1도처럼 패(覇)가 된다. 131까지 우변 출구를 봉쇄하자 132 쪽으로 항로를 잡았다. 132로 곧장 ‘가’에 붙여가는 것도 성급하다. 흑이 참고 2도 6까지 사생결단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 138까지 집을 지으며 이어가니 흑만 괴롭다. 139는 유일한 미개척지로 남은 우중앙에 집 칸이라도 마련하려는 안간힘. 백은 140으로 즉각 회신한다. 거부의 메시지지만 몸짓은 여전한 ‘유연(柔軟) 모드’다. 빗발치는 초읽기를 뚫고 조치훈이 흑 돌 하나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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