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실타래

〈제11보〉(158~172)=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迷宮) 속에 내던져진 아테네 미남 청년 테세우스. 그가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은 실타래 덕분이었다. 자신을 연모한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를 길잡이 삼아 괴물을 처치한 후 동굴을 탈출했다. 중앙 백의 행마에서 이 희랍 신화 한 대목이 문득 떠오른다.
컴컴한 흑의 동굴 속에서 백의 조심스런 행군이 계속되고 있다. 158의 빈삼각, 160의 한 칸 뜀도 비범하다. 158로 즉각 161에 뛰는 것은 참고도의 수순으로 백의 후수(後手)가 된다. 실전은 160 다음 백이 ‘가’로 연결해가는 수가 있어 167의 손질이 불가피하다.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를 풀며 동굴을 탈출한 조한승, 맞은 편 언덕에 168로 훌쩍 내려앉는다.
마지막 큰 곳마저 차지하면서 좌중앙 백의 대가(大家)가 완성됐다. 171까지 행사 후 172가 또한 정확한 끝내기 수순. 이 역시 선수(先手)냐 후수(後手)냐의 주도권과 관련된 날렵한 맥점이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법. 계속 선수를 내줘야 하는 흑으로선 속이 탄다. 172로 단순히 ‘나’로 막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다음 보에서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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