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재발견 '해변의 여인'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여행길에 오른다. 벚꽃이 핀 서해안 해변이다. 횟집에서 술을 마신다. 술은 욕정을 부르는 마법이다. 굳이 애인이라고 할 것이 없지만 그래도 한 남자는 여자를 애인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한 여자와 하룻밤을 지새는 남자는 애인이 아닌 처음 만난 남자다. 그리고 한 남자의 욕정은 채워진다. 다음날 그 남자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뒷간을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이 수컷의 심리라고 했던가. 하룻밤은 하룻밤에 불과하다. 살을 맞댄 여자와 선을 긋는다. 일행이 서울로 돌아온 뒤 그 남자는 혼자 다시 그곳으로 내려간다. 참회를 하지만 이번에는 유부녀를 만난다. 또 술을 마신다. "안된다" 하면서도 욕정은 이들을 같은 숙소로 인도한다. 한데 그 모습을 그녀가 지켜본다. 홍상수 감독의 일곱번째 작품인 '해변의 여인'이 세상에 나왔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등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진 그의 색깔이 여전히 묻어난다. 술과 관계 맺기, 남녀의 동상이몽은 이 영화에서도 주요 소재다. 그러나 주목할 부분이 있다. '홍상수의 재발견'이다. 세월이 강물을 타듯 그도 달라졌다. 더 이상 음지를 지향하지 않는다. '해변의 여인'은 광의적 개념의 홍상수 틀 속에 있으나 유쾌하고 흥미진지한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중이라는 단어를 한꺼풀 더 입혔다고나 할까. 이렇다보니 상황이 전개될 수록 지루하다는 생각보다는 작품에 빠져드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다 배우들의 호연은 극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예전의 작품에선 홍상수 감독은 창살 없는 감옥을 만들었다. 배우들도 그 테두리 안에서 서성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김승우 고현정 김태우 송선미 등 네 주연 배우들이 개성 강한 연기로 광채를 냈다. 능청스러운 연기의 극치를 달린 김승우, 때론 푼수같고, 때론 엉뚱한 고현정, 홍상수 작품의 맛을 아는 김태우, 절제가 돋보인 송선미가 절묘하게 하모니를 이뤘다. 홍상수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또 다른 매력을 맛볼 수 있는 '해변의 여인'은 31일 개봉한다. 특히 그의 영화로는 처음으로 '15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