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장사 마돈나' 여자가 되려고 샅바를 잡다

충무로엔 따뜻한 척하는 영화가 유달리 많다. 따스함을 얻은 대신 투박해지고 마는 영화도 적지 않다. 온도로 작품의 가치를 재려고 하는 시도는 허망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천하장사 마돈나’(31일 개봉)는 진짜 따뜻한 게 어떤 건지 보여준다. 인간의 체온을 잃지 않으면서 예민한 시선과 유쾌한 동작까지 제대로 갖춘 이 작품은 여전히 세상엔 온기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려서부터 팝가수 마돈나 음악을 즐겨 들어온 소년. 체구는 작지만 힘이 장사인 고교 1년생 동구(류덕환)에겐 숨겨둔 꿈이 있다. 성전환 수술을 통해 여자가 된 후 짝사랑하는 일어 선생님(초난강) 앞에 다가가는 것. 폭력적인 아버지(김윤석)를 견디다 못해 어머니(이상아)가 가출한 뒤, 실직한 아버지와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동구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코치(백윤식) 지도하에 씨름대회에 출전한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장면장면을 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빌리 엘리어트’ ‘나의 장미빛 인생’ ‘으랏차차 스모부’ 같은 작품들이 줄지어 떠오른다. 여성적 세계를 대표하는 춤 장면이 효과적으로 표현된 데 비해, 남성적 세계를 상징하는 씨름 장면들은 지나치게 해프닝으로만 표현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동구가 아버지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때의 만화적인 묘사에서 드러나듯, 극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장면 연출도 간혹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 넘쳐나는 건강한 활력은 이런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소외된 이들의 고통에 카메라를 비춘다는 미명하에 시각적으로 착취하고 정서적으로 백안시하는 영화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천하장사 마돈나’ 같은 수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여간 흡족한 일이 아니다. 이 영화를 공동으로 연출한 이해영·이해준 감독은 공격적인 성정치학 이론이나 신파적인 묘사를 동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이해의 시선만으로 타고난 성(性)과 다른 성을 꿈꿀 수 밖에 없는 소년의 이야기를 훌륭히 그려냈다. 여자가 되어 첫 생리를 하는 꿈을 꾸다가 몽정을 한 뒤 몰래 속옷 빨래를 하며 우는 장면에서 드러나듯, 동구의 상충하는 꿈과 현실이 뛰어난 디테일에 담겼다.
기발하고 여유로운 유머가 독특한 리듬에 담겨 유쾌하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대중영화로도 강력한 매력을 지녔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소년병으로 출연했던 류덕환은 이 영화에서 뛰어난 캐릭터 소화력을 보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유의 어투로 괴짜 코치 역을 멋지게 살려낸 백윤식과 절망으로 삶이 뒤틀려버린 김윤석-이상아를 비롯, 이 영화의 조연 캐릭터들은 좋은 연기와 상대를 살려주는 앙상블로 하나같이 생생하다. 늘 해프닝을 달고다니는 씨름부 선배 3인의 코믹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다. 이 영화의 감독들은 몇 장면 쓰지 않고도 인물을 어떻게 오려 세울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김태용·민규동 감독은 새로운 재능의 출현을 알린 ‘여고괴담 2’로 공동 연출 데뷔한 뒤 각각 ‘가족의 탄생’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통해 그들에 대한 기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바 있다. 막 출발선을 함께 박차고 나선 ‘천하장사 마돈나’의 신인 감독들도 관객을 매혹시킬 수 있는 차기작을 연이어 내놓아 충무로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