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영화문화… 아직은 꿈일까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곧 한국 영화 최고 관객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 ‘괴물’의 기록을 만든 건, 가족과 청소년 관객이라고 한다. 한국영화가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중장년층의 관심이 절대적인데, 12세 관람가를 받은 ‘괴물’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이건 꽤나 의미있는 얘기다. 이전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세 편의 영화는 청소년이나 어린이가 접근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한국영화의 흥행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우리 영화와 영화문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지만, 그 속에 ‘어린이 영화’와 같은 다양한 시각과 방향을 제시할 여유는 아직 없다. 국내에서는 10년을 넘긴 유수한 영화제들이 성장,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지만 아직까지 다양한 방향과 축제의 장을 열지는 못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성장한 한국의 영화문화는 여전히 어른들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이제 서서히 다양한 축제의 장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9월14~19일) 역시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영화제에 앞서 방학 중에는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영상캠프를 개최하고, 축제 이후에도 어린이를 위한 영화문화의 필요성을 피력할 계획이다. 이제 두 돌을 맞은 영화제가 한국 영화문화의 지형도를 한꺼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런 행사가 하나 둘씩 늘어나 영화를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는 계기가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린이 영화제가 이전에 보기 힘든 축제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상찬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냉정히 들여다보면, 한국의 어린이들 중에도 다양한 영화 문화를 쉽게 접하기 힘든 수많은 지역적, 계층적 차이가 존재한다. 영화제와 더불어서 순회상영을 마련한 것은 이런 고민 때문이었다. 새로운 문화의 분위기를 형성하고자 영화제의 상징인 고양이를 빌린 ‘고양이영화버스’를 마련하였다. ‘고양이영화버스’가 아이들의 소망과 꿈을 실어다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차이는 지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감극장은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 중 장애어린이 관객을 위한 대안극장이다. 보는 영화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이 느끼고, 만지고, 생각하는 영화문화를 마련코자 기획했다.
흔히 어린이를 ‘우리의 미래’라고 하지만, 우리 문화는 아직까지 미래를 내다볼 여유가 없다. 대부분 문화 기획은 현재의 유행에 충실하기 마련이다. 좋은 축제란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미래를 기획하는 것은 모호하고 애매한 일이 될 수 있지만, 그만큼 더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어린이들에게 다가감으로써 꿈꿀 수 있다.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아이의 노래’를 읊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 노랫말 중에는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습관들을 하나 둘씩 익혀갈 것이다. 삶으로, 연애로, 책으로, 영화로. 문화는 이러한 주관과 습관을 제시하는 또 하나의 창문일 것이다. 요즘은 영화라는 창문이 무척이나 크고 또렷해 보이는 때다.
(장미희 고양국제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