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제 도입 1년 결산] 이창호, 역시 부동의 톱!

프로기사들도 ‘내신성적’에 따라 매달 한 번씩 울고 웃는다. 한국기원이 매달 집계, 발표하는 기사 랭킹제에 의해 자신들의 한 달 간 점수와 석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처음 도입 후 꾸준히 업데이트를 거쳐 온 랭킹제는 만 1년이 지난 이제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틀을 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사 랭킹제는 한국만 갖고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 중국은 한국보다 8년이나 앞선 지난 97년 가장 먼저 도입했다. 그러나 중국 랭킹제도는 연간 3회의 분기별 집계방식이어서 자료의 ‘선도(鮮度)’에서 우선 한국 랭킹보다 크게 떨어진다. 또 한국식은 기전의 가중치 부여 방식에서도 중국 제도에 비해 훨씬 앞서 있고, 중국식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던 상대평가 점수(상위 기사를 이길 경우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하는 것) 방식까지 가미했다. 일본은 기전 서열로 타이틀 보유자들에게만 서열을 매길 뿐 한·중 방식의 정례 랭킹 제도는 없다.
국내에 랭킹제가 도입된 지난 1년간 기사들의 순위도 요동쳤다. 이창호는 지난해 연말부터 3개월 간 잠시 2위로 밀려났으나 연초 1위로 복귀하더니 이번 9월까지 8개월 연속 1위를 유지, 부동의 최강자임이 확인되고 있다. 이세돌과 최철한은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지난 5월 이후 이세돌 2위, 최철한 3위로 조정된 상태. 그 뒤를 박영훈이 추격하면서 ‘4천왕’ 그룹이 견고한 성처럼 군림하고 있다.

2006년 9월 기준으로 박정상 조한승 안조영 조훈현 고근태 원성진이 포진한 6~10위권 대에서도 치열한 전선이 형성돼 왔다. 한때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박정상은 후지쓰 배 우승 등의 맹활약으로 4위 박영훈에게 400여점 차로 바짝 육박했다. 유창혁(14위) 목진석(15위) 송태곤(19위) 등 강자 그룹의 부진 속에 이영구 윤준상 강동윤 등 신진 강자들이 여차하면 10위권 이내로 뛰어들 기세다.
랭킹제는 일단 ‘참고 자료’로 출발했었지만 종종 진짜 ‘내신 전형’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작년 10월 영남일보 프로최고수전 때는 출전 멤버 중 4명이 랭킹을 근거로 초청받았고, 올해 농심배 예선에선 강자끼리의 대결을 피한다는 명분 아래 상위 랭커 20명이 분산 배치됐다. 시간 또는 예산 문제로 전체 규모 대회 개최가 어려울 경우 이 같은 장학생 우대 제도(?)는 더욱 확대될 소지가 많다. 하지만 랭킹제와 관련해 손을 봐야 할 과제는 아직 산적해 있다. 과거 2년간의 성적을 시간대별로 체감(遞減)해 가는 방식의 적절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50위까지 발표하는 현 방식도 재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수시로 태어났다 없어지는 기전, 해마다 바뀌는 대회 방식 등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하다. 서구 스포츠 식으로 매달 또는 매년 ‘가장 성적이 뛴(내려간) 선수’, (랭킹 기준으로) ‘최대의 이변 대국(most upset match)’, ‘최고의 신인’ 등을 가려 발표하는 것도 좋은 팬 서비스가 되리란 지적엔 귀를 기울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