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흑 辛勝

〈제13보〉(185~203)=사람의 얼굴처럼 바둑에도 상(相)이 있다. 크게 봐서 2가지. 하나는 흑백의 돌들이 얽히고 설킨 난전형, 또 하나는 이 바둑처럼 집의 구획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주택형’이다. 유심히 살펴보면 이창호는 앞의 경우 승률도 대단하지만, 판이 후자의 상(相)으로 짜이면 여간 해선 지지 않는다. 집과 영토의 경리(經理)에 관한 한 이창호를 능가할 기사가 드물다는 방증 아닐까.
백이 △에 단수쳐 온 장면. 185로 186에 잇는 것은 참고도의 진행으로 귀의 백이 산다. 185로 버틴 수는 “패(覇)를 하자”는 통보다. 이 메시지엔 패를 굴복해선 흑이 못 이긴다는 것, 그리고 팻감엔 자신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의 경우 무모한 강공책이지만 팻감 수가 월등하면 상대가 오히려 손해를 입는 형태다.
195로 패를 때렸을 때 백에게 마땅한 팻감이 안 보인다. 흑이 196을 외면하고 패를 해소한 것은 “이것으로 이겼소”하는 승리 선언. 돌이켜 보면 우하귀의 맛을 너무 과신해 다른 큰 곳을 빼앗긴 것이 백의 패인이 됐다. 203까지 사실상 승부 끝. 이후 수순은 총보로 넘긴다. 흑이 8집을 남겨 덤을 제하고 1집 반을 신승했다. (189 195…▲, 192 197…1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