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6일, 개봉 21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동원한 < 괴물>은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쓰며 신기록 행진을 하고 있다. <괴물>의 흥행은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영화 위기설이 나온 시점에다, 초여름부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싹쓸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한국영화의 선전이라는 점에서 영화계에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괴물>의 흥행 가속화와 관련,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 괴물>은 620개라는 역대 최다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이는 전국 1,648개 개봉관의 40%에 가까운 수치다. 최근 열세 번째 영화 <시간>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이 “관객이 20만을 넘지 않으면 다시는 한국에서 내 영화를 개봉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이 같은 독식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격이었다. 그에 대해 <괴물>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 측은 “시장의 논리에 따랐다면 7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잡아야했다. 다른 영화의 개봉 여건 등 많은 상황을 고려해 프린트 숫자도 550개로 제한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결국은 관객의 선택일 뿐 스크린의 숫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물론 < 괴물>은 흥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영화에서는 이제까지 선보이지 않았던 ‘괴수영화’라는 색다른 소재의 선택과 이를 뒷받침 할만한 작품성과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한국영화로서는 최고수준의 CG 등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국 스크린수의 40%에 해당하는 스크린을 장악하고 좌석수로는 68%까지 싹쓸이 한 <괴물>의 성공이 ‘한국 영화의 약진’으로만 평가하기에는 썩 개운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나아가 김기덕 감독의 문제의 발언이 나오게 된 것을 보더라도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한다는 부정적 측면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야하며, 이에 대해 관객의 입장에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각설탕>, <몬스터하우스> 등 8월 개봉 영화들 가운데 몇몇은 200여개 이상의 스크린 수로 출발했지만 속 빈 강정이었다. 주요 극장들 대다수가 오후까지는 스크린을 주고 정작 저녁 황금 시간대에는 <괴물>을 상영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괴물>을 이미 본 관객이거나, <괴물> 이외의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을 때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할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괴물>을 봐야 했던 관객 숫자도 상당했을 것으로 본다. 부익부 빈익빈 식으로 <괴물> 관객이 늘어날수록 다른 영화 상영 기회는 줄어들고,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괴물>을 봐야할 관객이 늘어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됐다. 즉 쏠림현상을 유도해 관객의 선택권을 좁게 만드는 기업과 이를 부채질해 천만관객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언론이 문제인 것이다. 저예산 영화와 예술 영화 등을 선택하는 소수 관객에게 영화를 볼 권리와 기회가 마땅히 제공되어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괴물>의 ‘관객 쏠림 현상’은 비단 <괴물>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천만 관객의 시초를 연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한국영화의 구조적 모순이다. 실제로 영화배급시장의 독점체제가 공고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영화배급 거대 메이저 3사인 CJ엔터테인먼트, 시네마서비스, 쇼박스㈜미디어플렉스가 상반기에만 83.3%라는 점유율 수치를 기록했다. 여기에 또 다른 멀티플렉스 체인인 롯데쇼핑㈜롯데엔터테인먼트까지 가세하면 총 4개사가 90%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가진다. 이들은 또한 투자-배급-극장의 수익구조를 갖춰서 과반수에 가까운 스크린을 점유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문제는 <괴물>과 <시간>의 작품성의 차이가 아니라, 이 같은 시장구조 속에 위치한 <괴물>과 <시간>이다. <괴물>의 천만 관객 동원은 결국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거대 배급사의 물량공세와 높은 비용의 마케팅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관객들은 자신이 영화 자체를 선택했다고 여기지만, 이미 그 영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마련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라면 <괴물>에 이어 제2의, 제3의 <괴물>이 나올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각에서는 마이너리티 쿼터, 프린트벌수 제한, 극장주와 배급사의 수익 배분 비율 재조정 등 다양한 처방이 고려되고 있다. 각종 상업영화의 틈바구니와 그 틀 속에 자꾸 작은 영화들을 끼우는 것이 아니라 분리해서 정책을 짜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스크린 수 제한 같은 네거티브 규제책보다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작은 영화에 대한 좀더 합리적인 지원 방안을 영화인들과 정부가 고민해야 할 때다. 관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좋은 영화들을 선택해 볼 권리가 있다.
지난 87년 단편영화 '어머니의 초상'으로 데뷔한 어일선 감독(39)은 지난 2003년 영화 '플라스틱 트리'로 만하임-하이델베르그국제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한국영화의 기대주. 전액 유럽자본으로 제작된 김정현 김인권 조은주 주연의 '플라스틱 트리'는 또 칸, 도빌, 몬트리올, 전주, 부산, 부천국제영화제 등에 초빙돼 본선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한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서 개봉돼 호평을 받았다.
문학박사로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영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는 납북자 김영남씨와 결혼한 메구미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첩보액션 영화 '파랑새'(가제, 제작 아이스타미디어)의 메가폰을 잡고 오는 11월 크랭크인한다.
내년 봄 개봉 예정인 이 작품은 일본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여 촬영시작도 하기전에 제작비 60억원에 해당하는 판권수출계약을 맺었으며, 한국의 주연배우로는 송승헌이나 이동건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메구미 역은 일본 배우가 맡는다.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