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舞飛 딴 생각] 명콤비의 활약, 오늘도 계속 됩니다.

한 명의 배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도 만만치 않지만 두 명의 콤비 플레이가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 또한 영화를 보는 큰 재미 중 하나다. 한국영화에도 어느새 일종의 시스템처럼 자리 잡은 여러 콤비들. 그들의 연대기를 살펴본다. 스크린이 밝아진다. 배우가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화면에 꽉 차는 무게감. 어떤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관객에게 충분하다. 만약에 이러한 ‘중량감’을 기준으로 베스트 콤비를 꼽는다면 아마도 프랑스의 장 가뱅과 알랭 들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암흑가 영화’들에 출연한 그들은 그렇게 서서 침묵으로 이야기한다.

프랑스에 가뱅과 들롱이 있다면, 할리우드엔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있다. 사실 그들이 함께 공연한 영화는 ‘스팅’과 ‘내일을 향해 쏴라’밖엔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위대한 콤비로 기억되는 건, 그 영화들이 흥행에 성공한 탓도 있지만, 아마도 타고난 미모의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적절히 배분된 역할과 각각 개성적인 캐릭터는, 그들을 할리우드의 영원한 콤비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로버트 드 니로는 한 동안은 하비 키텔과, 이후엔 조 페시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창조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파트너로는 단연 알 파치노였다. ‘대부 2’에서 처음 만났지만 같은 화면에서 공연하진 않았고, 그들의 첫 만남은 ‘히트’였고 그 만남 자체가 히트였다. 특정 장르에서 빛났던 커플이 있었다면 슬랩스틱 코미디의 ‘아버클과 키튼’과 ‘애보트와 코스텔로’ 등은 수많은 영화에서 같은 캐릭터를 반복하며 관객들에게 익숙한 웃음을 선사했다. 스크루볼 코미디에선 록 허드슨과 도리스 데이가 언제나 발랄하고 밝은 모습으로, 미국인들의 ‘잠자리 토크’를 대변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장르 커플’을 꼽는다면 단연 뮤지컬의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아스테어다. 그들이 춤추는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우아함의 극치였으며, 판타지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여기서 우리가 사랑하는 홍콩 영화의 그 사나이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웅본색’ 시리즈의 주윤발과 장국영, ‘지존무상’의 유덕화와 알란탐,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 등이 조금은 터프하다면, 주성치와 오맹달이라는 코믹 콤비가 빚어낸 그 수많은 ‘우스운’ 장면들은 수많은 마니아들을 포복절도하게 했던 아시아 영화의 문화유산이다. 한국영화에서 콤비를 이야기한다면 그 본격적 시작은 아마도 신성일과 엄앵란일 것이다. 1960년대 한국 청춘영화의 강력한 아이돌이었던 그들은 영화에서 만나 실제 결혼으로까지 이어진, 완벽한 커플이었다. 그들은 ‘맨발의 청춘’을 비롯해 60여 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는데, 결혼식 날엔 식장 부근에 2천여 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한편 신성일은 트위스트 김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후 한국영화의 콤비 플레이는 주로 코미디와 액션에서 이뤄졌다. ‘막둥이’ 구봉서와 ‘살살이’ 서영춘은 당대의 최고 코믹 콤비. 액션에선 장동휘 황해 박노식 허장강 독고성 이예춘 등의 거친 사나이들이 태그매치를 벌이듯 짝지어 등장했다.

하지만 긴 세월 동안 ‘콤비의 아름다움’을 잊고 살았던 한국영화. 여기서 ‘라디오 스타’는 안성기와 박중훈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환기시킨다. 1988년 ‘칠수와 만수’에서 만나서 1993년 ‘투 캅스’와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공연했고 이번에 네 번째 영화를 함께 찍는 두 사람. 처음 만났을 땐 30대 중반과 2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어느새 50대 중반과 40대 초반이 되었고, 그 시간의 흐름만큼 그들의 호흡은 더 깊어졌다. 이 영화에서 그들은 서로의 주름을 헤아리는 듯한 미세한 호흡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가 감동적인 건, 아마도 그러한 ‘배려 담긴 연기’의 앙상블 때문일지도 모른다. / 월간 ‘스크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