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맛따라] 대전 근교 식장산 & 만인산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한국의 대도는 대전으로 통한다.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대전은 철도, 고속철도, 국도, 고속도로가 분기하는 요충지다. 서울 153km, 대구 138km, 부산 276km, 광주 183km로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멀지 않는 곳 청주에는 국제공항이 있어 육상 교통과 함께 항공의 입체적 교통망까지 갖추고 있다.
지형은 노령산맥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간분지로 식장산(580m), 보문산(457m), 계족산(429m), 구봉산(264m)의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갑천(35.2km), 유등천(15.7km), 대전천(7.7km)이 남에서 북으로 흘러 전국 4대 강 중의 하나인 금강과 합류한다.

취재길에 앞서 대전시청산악회 한상섭 회장(시청 예산담당관)을 만났다. 골수 산꾼인 한 회장은 시청에서 제작한 몇 가지 자료와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인 진달래산악회 이춘화 회장이 저술한 <대전근교의 산> 한 권을 건네주었다. 한 회장과 이 회장이 다음 날 아침, 지난 3월16일 개통한 대전도시철도(지하철) 판암역으로 나와 주었다.

이 회장은 그의 책 머리에서 ‘오전에 볼 일 보고 오후에 간단한 산행’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전은 축복받은 땅이라 생각하며 대전에 살고 있음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산행을 하는 진달래산악회는 1992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735회차의 산행기록을 갖고 있다. 월 2회 근교산행, 월 2회 원정산행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데 지금 원정산행은 백두대간 종주 중이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진달래산악회는 창립 이후 줄곧 이춘화씨 한 사람이 회장직을 맡아 끌고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참으로 긴(?) 세월, 10년 이상 장기집권(?)의 비결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그것은 이 회장의 기획력이었다. 특히 올라야 할 대상 산 선정이 기발하고 특이했다. 그의 산행수첩에는 위도에 따른 북행의 개화일자와 남행의 단풍일자가 소상하게 적혀 있다. 뿐만이 아니다. 여름 계곡의 수량과 겨울산의 적설량까지 손바닥 위에 그려 놓고 있었다. 이 자료들을 근거로 안내해야 할 산을 미리 답사한 다음에야 대상 산을 선정하는 터라 산행을 함께 한 회원 모두가 뿅 간다는 것이 이 회장의 표현이다. 심지어 어떤 회원은 1년 사계, 조국 강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고도 했다.

대전YWCA 진달래등산팀으로 발족한 진달래산악회의 초창기에는 입회를 위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회원수를 45명 이하로 제한한다는 원칙을 고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45명은 대형버스 정원 숫자다. 또 한 가지, 회원들로부터 받은 회비는 당해연도로 결산, 산악회에 기금을 남겨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화(禍)를 부른다는 진리는 산악단체에서도 적용된다는 것.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헤일 수 없이 많은 등산단체들과 등산인구 1천만 시대에 이춘화 회장의 슬기와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뒤로가든- 넉넉한 먹거리의 식장산

산이름에 먹거리(食)가 담겨져(藏) 있다. 식장산(食藏山)이라. 이 산은 대전시 동구 판암동, 세천동, 산내동 일원에 위치한 산으로 대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충북 옥천군 군서면, 군북면과 경계를 이루는 대전의 터줏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대전시가지와 서쪽 보문산, 북쪽 계족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동북쪽으로는 넓은 대청호가 펼쳐져 있다.

우리 국토는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디를 가나 산이 보이지 않는 지역이 없다. 유일 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곳, 전북 김제땅에서도 지평선이 보이는 반대편에는 산이 솟아 있다. 이렇게도 많은 산이 있는 나라에서 먹을 식(食) 자가 들어가 있는 산은 식장산이 유일하다. 행여 또 다른 산이 있을까 하여 우정산악회가 펴낸 <한국의 山 1300>까지 들추어 보았지만 식장산 말고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연으로 산이름에 이 글자가 들어갔을까 궁금해졌다. 이 명칭은 이 산이 백제시대 신라의 침공을 방어하던 요새로 성을 쌓고 군량을 많이 저장해 두었다는 기록에서 연유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산에는 먹을 것이 쏟아지는 밥그릇이 묻혀 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식장산이라는 이름에는 아름다운 전설 하나가 내려오고 있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끼니 걱정을 하며 살던 먼 옛날, 노모와 아들 하나, 자신들 부부 네 식구가 살았는데, 젊은 내외는 집안에 입(口) 하나를 줄이고 노모를 봉양하겠다는 생각으로 한 사람이 땅속에 묻히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묻힐 땅을 파 보았더니 땅속에서 그릇 하나가 나왔는데, 그 그릇에다가 음식을 담으면 몇 배로 불어나서 그 후로는 끼니 걱정을 면했다는 것이다. 하늘이 이 부부의 효심에 감동해서 요술그릇을 주었다는 것이고, 노모가 세상을 뜨자 그릇을 도로 제자리에다가 묻어 두었다는 이야기에서 식장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식장산 코스 중 가장 붐비는 세천유원지에는 전형적인 산자락 음식점 몇 집이 영업 중인데, 그 중에 ‘뒤로가든(042-273-8886)’이라는 음식점이 외부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대전~옥천간 4번 국도에서 식장산 가는 길로 접어들면 세 갈래 갈림길이 나오고,그 가운데 길이 세천유원지로 올라가는  길이다.

뒤로가든은 유원지 초입에 있는 집으로 등산객들만이 아니고 대전시내 곳곳에서 산자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식도락을 즐기겠다는 손님들로 늘 만원사례다. 주요 메뉴는 유황오리훈제나 유황오리송이해물백숙, 유황옻오리로 4인 기준 40,000원이다. 이 음식에는 묵사발과 해물칼국수가 따라 나오기 때문에 별도의 식사나 안주를 주문할 필요가 없다. 이밖에 토종닭 엄나무백숙과 도리탕,  참옻닭 요리도 차려낸다. 별미인 촌돼지찌개, 보리밥, 굴전, 손두부, 도토리묵, 해물파전 등도 먹을 수 있다.

옥호는 8년 전 개점할 때 황학순-김성혜 주인 내외가 인생살이 여유를 갖고 뒤도 돌아보면서 살자는 뜻을 담아 정했다고 한다. 미모에 교양미까지 듬뿍 담고 있는 안주인 김성혜(45)씨의 친절함은 식장산을 즐겨 오르는 대전 산꾼들에게는 이미 정평이 나 있고, 손님들의 교통편의를 위해서 12인승 승합차를 운행하고 있다. 먼 곳에서 기차편으로 대전역으로 와서 지하철을 타고 판암역부터는 이 승합차를 이용하는 손님들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며 주인 내외는 지하철의 고마움에 절이라도 몇 번 하고 싶다며 즐거워했다.

원조찻집 - 대전 야경은 식장산 정상에서

갑천 따라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강물에 비친다. 가로등 불빛 따라 산책로가 흐르고 산책로를 걷는 젊은 연인들의 입에서는 시어가 흘러나오고 잔잔한 음악도 흘러나온다. 대전시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경이다. 그렇지만 이들 연인들에게 더 아름다운 야경 한 곳 소개하고파 진다. 그곳은 메트로폴리탄 대전의 큰 도심 야경이 한눈으로 쑥 들어오는 식장산 정상이다. 어느 때였던가. 어떤 이유로 이곳까지는 일반인 접근이 어려웠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판암동을 지나 세천고개 못미처 식장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좁은 산길을 따라 자동차로 오르면 된다. 산 정상까지 자동차로 오른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정상에 닿으면 자동차 라이트는 꺼야 하겠지. 까만 밤하늘 아래 그림처럼 펼쳐진 크고 작은 불빛이 장관을 이룬다. 대도심의 야경이 불바다가 되어 이글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대전의 또 다른 모습에 누구인들 감탄사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겠다.

이렇게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에 특별한 편의시설이 없다. 허름한 건물의 작은 매점에서 음료수 한 잔 사서 마실 수 있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이 허름한 건물을 잘 살펴 보았더니 아래쪽에 ‘식장산 정상 원조찻집’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목이라도 축일 수 있는 매점이라도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이 매점(017-432-6300)은 김승태씨(50)가 오래 전부터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억센(?) 경상도 말투와는 달리 손님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있다며 큰 망원경 하나를 건네준다.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곳은 행글라이딩 활공장이기도 했다.

원미면옥 - 50년 역사와 전통에 불황은 없다

3,000원 하는 냉면 한 그릇 먹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다. 줄 선 손님이 많은 경우에는 업소에서 번호표를 나누어 준다. 순서를 기다렸다가 차례가 되면 식당으로 들어가서 얼른 냉면 한 그릇을 먹고 나와야 한다. 식탁에 오래 앉아 있지를 못한다.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서다. 그런데도 손님들은 계속 이 집을 찾는다. 음식값이 싸기는 하지만 싼 음식값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식장산 가는 길, 4번 국도변 대전 시내버스 829번과 726번 종점에 붙어 있는 ‘원미면옥(042-286-7883)’ 이야기다. 간판에 부기해 놓은 대로 5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업소다. 외길 50년이면 이 세상 무엇이든 못할 일이 있겠는가. 식장산을 좋아하는 대전의 오랜 산꾼들은 산행의 즐거움 50%, 원미면옥 냉면 먹는 즐거움 50%로 치부한다고 했다.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청수정 - 판암 전철역의 하산주

대도시에 지하철이 개통되면 역세권은 생활패턴이 바뀐다. 지금 대전 지하철의 역세권이 그런 변화를 시작했다. 대전 지하철은 비록 일부 구간만 개통되었지만 종착역인 판암역 주변은 앞으로 큰 변화가 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주말이면 등산객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역무원들의 말이다.

판암역에서 옥천 방향 갓길, 판암주공2단지 옆쪽에는 숯불돼지갈비와 냉면, 갈비탕 등을 먹을 수 있는 한식당 ‘청수장(042-282-8999)’이 성업 중이다. 20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규모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단체 산행의 경우 하산길 해단식이나 하산주 걸치기에 알맞은 곳으로 추천할 만한 업소다. 냉면 4,000원, 갈비탕 5,000원. 숯불돼지갈비 6,000원.

만인휴게소 - 돌솥갈비탕으로 점심

대전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 17번 국도, 대전시 동구와 충남 금산군 경계점에 추부터널이 있다. 터널 위쪽의 산이 만인산이다. 만인산은 만 길이나 되는 산이 높고 깊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56만여 평에 야영, 피크닉, 삼림욕, 체력단련, 야외마당, 캠프파이어, 어린이놀이터, 잔디광장 등의 시설을 두루 갖추어 놓은 자연휴양림이 잘 조성되어 종합휴양지로 인기가 대단하다. 이 산의 봉수레미골은 대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경북대 산악회 OB 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