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행시' 와 제작자 이승재

<김호영 기자의 스타시티 인 시네마> 　 지난 9월4일이었다.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앞. 이날 오후 2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시사회에 앞서 제작사인 LJ필름의 이승재 대표와 만났다. 극장 뒤 허름한 식당에서 고등어구이를 곁들인 백반으로 점심을 같이하면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표는 시사회에 앞서 자못 긴장하면서도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나쁜 남자' 등 숱한 영화를 만들면서 예술성을 인정받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제작자였지만 흥행작이라곤 없었다. 시쳇말로 본전도 못건지는 영화만 만든 제작자였다. 그랬던 그가 이번엔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이젠 흥행제작자로 거듭나는 이승재를 볼 것이라고. 그렇다고 영화적 완성도를 버리지는 않겠다면서. 밥한그릇을 10여분만 후딱 해치운 우리는 극장앞으로 갔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극장앞은 시사회표를 구하려는 수백명의 기자들로 붐볐으며 수십미터나 될 만큼 장사진을 이뤘다. 시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드문 것. 그만큼 이 영화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었다. 기자도 표를 받아 맨 뒷줄에 앉았다. 이 대표는 따라 들어왔으나 자리에는 앉지 않고 오는 손님들을 맞기에 바빴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됐다. 기자는 강동원이 죽인 딸의 어머니가 면회를 가서 절규하고 용서하는 장면에서 그만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그리고 옆을 봤다. 모두들 넋이 나간 사람들 처럼 영화에 푹 빠져 있었다. 특히 여기자들중에는 연신 눈물을 닦는 풍경도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 영화는 끝났다. 시사회때면 흔히 터져나오던 박수는 없었다. 대신 침묵이 흘렀고 극장을 나서는 기자들 사이에선 잘 만들었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대표를 만났다. 어떻게 봤냐는 물음에 기자는 좋은데 좀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을 했다.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2％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와 말을 나눴는데 그녀는 참 잘 만들었다며 이 대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랬다. 2％가 부족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멜로영화로선 최고수준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런 반응은 곧바로 흥행으로 이어졌다. 전국 520개 스크린, 개봉전 예매율 99％ 등 흥행을 예고한 '우행시'는 14일 개봉한 뒤 첫주말 1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했다. 2주차에도 85만여명의 관객을 추가하며 205만6000명의 관객동원 실적을 올렸다. 멜로영화의 경우 서울의 관객비중이 높지만 '우행시'의 경우 지방에서도 관객이 쇄도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 단순히 멜로영화가 아니라 가족영화로서도 볼맛이 난다는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졌다. 관객들은 강동원과 이나영의 눈물에 함께 눈물지었고 도처에 깔린 가족애와 인간애에 관객들은 전율같은 감동에 휩싸였다. '우행시'의 이런 흥행추세는 추석을 관통하면서 10월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충무로의 전망. 특히 추석영화중 가족들이 잔잔한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영화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 대표는 결국 두마리의 토끼를 잡는 셈. 작품성과 흥행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이 대표의 가을은 여느해보다 풍성하다. 이 대표는 말한다. 역시 관객들의 성원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작품성과 감동을 두루 갖춘 영화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히겠다고. 추신;기자는 지난해초 한 허른한 술자리서 이 대표와 동행했다가 송해성 감독을 만났다. 송 감독과는 전작 '역도산'의 일본촬영 때 도쿄에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 구면. 이 대표와 송 감독은 64년 용띠 동갑내기. 그때 그 술자리가 '우행시'의 태동을 위한 출발점이나 다름없었다. (스포츠조선 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