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바둑 풍년’

가을도 깊어가는 10월 마지막 주, 전주 완산벌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흑백 향연이 펼쳐진다. 21일부터 27일까지 1주 동안 제1회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를 비롯한 갖가지 바둑 잔치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국고 2억5000만원 등 총 3억8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매머드 행사다. 개막에 앞서 현장을 미리 답사해 본다.

▶66명 원년 패권 놓고 각축 메인 이벤트 격인 세계선수권대회는 1국 1대표 방식에 따라 66명의 각국 대표 선수들이 출전, 전주교대 체육관에서 맥마흔 시스템(변형 스위스리그) 8라운드로 패권을 가린다. 첫 대회임에도 불구 27년의 역사를 지닌 일본 주최 세계선수권(2006년 68개국 참가)에 필적하는 대규모여서 한국 바둑의 위상 제고에 큰 몫을 맡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전 선수의 지역별 분포는 유럽(35명)이 가장 많으며 직업은 회계사, 그래픽 디자이너, 컨설턴트에다 태권도 사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베네수엘라 대표 마리아 푸에르타(50) 3급이 홍일점으로 출전 신청을 냈다. 최고령자는 크로아티아의 조란 무탑지자(61) 5단, 최연소자는 이스라엘 아미르 프라그맨(13) 4단. 이번 대회 패권은 한국의 우동하(20) 6단과 일본 히라오카 8단, 중국 후유칭 7단 간의 각축 결과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이창호배·KABA컵도 동시에 열려 어언 8회째를 맞은 이창호배도 동시에 열린다. 21, 22일 양일간 전주교대 체육관서 일반부·여성부(단체전)·청소년부·어린이부 등 4개 부문 우승자를 가려낼 예정. 이 대회 일반부의 2, 3회 우승자였던 이강욱과 서중휘는 이후 프로에 진출했을 만큼 권위가 높다. 올해는 춘추전국 상태인 어린이부(128명 선착순)에서 어떤 얼굴이 챔프로 떠오를지가 관심사.
23, 24일 양일간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KABA(대한바둑협회)컵 대회도 흥미롭다. 세계선수권부 출전자들과 달리 자비 참가 형식이지만 14세에서 69세까지의 ‘열혈 아마추어’들이 출전해 패권을 노린다. 일본의 고마쓰(小松國夫) 八단, 유럽서 보급 활동을 해 온 일본 여류 시게노(重野由紀) 二단 등 임원으로 온 프로 기사들의 출전 가능성도 있다. 대회 방식은 총 호선. 이 밖에 초속기전(예선 8분·본선 10분 타임아웃제), 페어대회(2인 1조), 순장대회 행사 등도 이어진다.

▶문화행사 및 학술대회 21일 개막 풍물공연 때는 바둑알 콘셉트의 고깔, 참가국 국기 행렬 등이 눈길을 끌 전망. 바둑인의 밤은 21일 밤(전통문화센터)의 산조 판소리 설장구 공연과 22일 밤(전주시청 앞)의 한지(韓紙) 패션쇼 등 이틀에 걸쳐 거행된다. 또 22일 전주교대 운동장에선 전통 민속놀이이자 바둑의 원조로 불리는 ‘고누 놀이’ 재현 행사도 잡혀 있다. 22, 23일 양일간 전주교대에서 치러질 국제 바둑학 학술대회엔 국내외 관련 학자들이 총 14개의 학술 논문을 발표한다. ‘패(覇)의 가치 평가’(빌 스파이트), ‘기력검사 요인 탐색과 검사모형 개발 연구’(김진환), ‘조합적 게임이론을 이용한 수상전 분석’(나카무라 데이고), ‘포석의 뉴로·퍼지 추론’(이병두) 등 흥미로운 테마가 대거 등장할 예정. 한편 22일엔 아시아 16개국 협회장이 참가한 가운데 아시아바둑협회 창립 준비 모임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