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암울한 현실 헤집는 ‘지아장커의 힘’

5세대니 6세대니 하며 중국 감독들을 범주화해 거론하는 것도 이젠 진부한 일이 되어버렸다. 5세대를 대표했던 장이모와 첸카이거가 무술액션용 와이어와 원색 의상에 휘감겨버리고, 6세대 맏형 격으로 활약했던 장위안이 영화제들 속에서 맴돌다 힘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중국의 작가주의 영화는 점점 영화팬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지아장커(36)가 있다. ‘소무’ ‘플랫폼’ ‘임소요’를 연이어 내놓으며 사실주의 세밀화의 진경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올 베니스 영화제에서 ‘스틸 라이프’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국제적 추인을 받았다. 20일 개봉하는 ‘세계’는 동양적 관조로 뒷짐지지도, 혁명주의자의 혈기로 웃통을 벗어붙이지도 않으면서,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고민과 그늘에 생생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 젊은 대가의 2004년 작품이다.
‘세계’의 무대는 에펠탑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까지, 각국의 명소를 축소해 한자리에 모은 북경의 테마 파크.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댄서인 타오와 공원 경비원인 타이셩을 중심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담아냈다. 지방 출신으로 북경에 기회를 찾아온 그들은 삶도 사랑도 모두 불안하고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욕망은 부유하고 희망은 침잠한다. 그리고 세계를 한데 불러모은 듯 보이지만 기껏 세계의 변두리일 뿐인 그 테마파크에선 모두가 이방인이다. 지아장커는 복제 건물로 가득한 테마파크의 조악한 화려함과 그 속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비루한 삶을 대비시키며 현대 중국이 맹신하는 속도전의 허망한 뒤안길을 응시한다.
“우리 죽었어?”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야.”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 라스트신을 연상시키듯, 영화는 타오와 타이셩이 주고받는 결연한 대화로 막을 내리지만 ‘세계’의 등장인물들에게선 ‘미래’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중국영화의 미래는 그들의 암울한 현실을 집어내는 지아장커의 리얼리즘에 있다. 부박한 현실이 최고의 예술가를 만들어내는 이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