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도 없고, 의자도 없고… 홍보용 파티 따윈 필요없어!

40대 초반의 영화제작자 A씨. “뭐야,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VIP는 위층 테이블로 몰래 모셨더구만. VIP석에 앉은 선배가 나보고 올라오라 손짓하는데, 기분 나빠서 나와버렸어요.”
30대 중반의 영화마케터 B씨. “사실은 인터넷을 파티 사진으로 뒤덮게 해서 영화 홍보하는 게 목적이죠. 돈이 좀 많이 들긴 하지만.”
30대 후반의 영화 프로듀서 C씨. “그래도 난 부럽기만 하네. 우리는 작게 해서 (언론에) 보이지도 않아요. 무조건 크게 해야 돼.”
부산영화제 이튿날 밤, 어느 호텔 대연회장. CJ엔터테인먼트 주최의 1000명 초청 파티 ‘중천의 밤’현장이다. 인구밀도는 출근시간 지하철 신도림역을 방불케 했고, 보이는 건 앞사람의 뒤통수뿐이었다. 주스 한 잔을 받으려다 하염없이 늘어선 줄에 좌절했다.
사실 규모 면에서 가장 큰 편인 ‘중천의 밤’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언제부턴가 부산영화제의 밤 파티는 영화인들 사이에 계륵이 됐다. 영화제 측이 공식행사로 이름을 올린 파티만 어림잡아 9일 동안 30회. 이날 토요일(14일)에는 ‘네이버 시너지 파티’(오후 5시) ‘천년학의 밤’(오후 6시) ‘CJ 엔터테인먼트 중천의 밤’(오후 8시) ‘강우석 펀드 출시기념 파티’(오후 9시 30분) ‘프랑스의 밤’(오후 10시), 무려 다섯 개의 크고 작은 파티들이 30분, 1시간 간격으로 열렸다. 파티 참가자들이 크게 바뀌는 것도 아니다. 충무로 투자·제작·배급 관련 영화인들은 시간대별로 단체 이동하며 주최측에 눈도장을 찍는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열렸던 ‘강우석 펀드 출시기념 파티’는 그나마 “의자도 있고, 맥주도 가져다 준다”며 ‘칭찬’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대형 파티에서 손님들은 뒷전. 사람들은 미어 터지고, 무대는 잘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대부분 ‘스탠딩 파티’여서 다리까지 곧 저려온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달을 보며 넋두리를 늘어놓을 즈음, 한 영화인이 ‘추억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했다. 99년 제 4회 부산영화제의 500명 만취 사건. 개막작 ‘박하사탕’ 제작진이 해운대 한 횟집에 영화인들을 초대했고, 급기야 나중에는 영화제 자원봉사자까지 모여 앉아 밤새 소주를 기울였던 기억. 호스트와 게스트 상관없이 접시를 나르고, 마지막엔 음식이 떨어져서 무쇠솥에 소라죽(주최측은 전복죽이라고 주장했지만)을 끓여 먹을 정도였지만, 너나없이 기분 좋은 만취상태로 빠져들어갔던 그 때 그 잔치. 당시 ‘박하사탕’ PD는 그 많은 손님들의 불콰해진 홍안(紅顔)을 일일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 기념사진을 나눠줬다지.
오늘(20일) 제 11회 부산영화제가 폐막한다. 규모와 속도가 지배하는 세속도시에서 영화계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화제의 본질은 축제이자 카니발이다. 카니발 참가자는 위반과 일탈의 쾌락을 꿈꾸는 법. 하지만 점점 더 부산영화제의 파티들은 난장의 카니발보다 허영의 시장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문근영 버전으로) ‘파티 따윈 필요없어!’라는 과격파가 나오기 전에, 부디 (최강희 버전으로) ‘파티에 대처하는 주최측의 자세’를 유념해 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