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삼풍 아픔 보듬고 희망의 꽃 피우다

95년, 그 해 여름은 눈물로 가득찼다. 버젓히 서 있어야 할 백화점이 한순간에 온데간데 없었다. 거짓말이길 바랬다. 하지만 아비규환의 현실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2006년 가을, 끄집어내기 힘들 것 같았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소재로 한 특별한 영화가 나왔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가을로'(제작 영화세상)다. 솔직히 영화가 시작되기 전 옛 악몽을 어떻게 그렸을까하는 물음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영혼이 맑아지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시보다 더 아름다운 서정적인 대사는 심금을 울렸고, 애잔한 사랑과 상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대한민국의 비경은 희망을 안겨줬다. 더욱이 사랑과 이별이 교차하는 계절인 가을에 맛 본 별미여서 감동은 두 배였다. 영화는 행복에서 출발한다. 사법연수원생 현우(유지태)와 방송사 PD 민주(김지수)는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행복은 이내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돌아온다. 함께 혼수용품 쇼핑을 하기로 한 날 현우는 약속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가기 싫다는 민주의 등을 떠밀어 억지로 백화점으로 보낸다. 하지만 홀로 자신을 기다리는 민주에게 서둘러 가는 현우의 눈앞에서 백화점이 처참하게 무너진다. 이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지만 현우는 여전히 웃음을 찾지 못한다. 급기야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순간 민주의 아버지로부터 '민주와 현우의 신혼여행'이라고 쓰인 한 권의 다이어리를 받는다. 현우는 다이어리의 지도를 따라 여행을 떠나는데, 그 여정에서 민주의 숨결이 묻어있는 세진(엄지원)과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우이도의 모래사막, 소쇄원,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꼽히는 동해안의 7번 국도를 마음으로 담아내면서 희망의 꽃이 피어오른다. 이 과정에서 메가폰을 잡은 김대승 감독의 섬세한 집념이 화면 곳곳에서 묻어난다. 흔치않은 10개월간의 촬영 열정 또한 숨을 쉰다. 특히 멜로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와 사극 '혈의 누'로 출중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 감독은 세번째 작품인 '가을로'에서 대자연을 통해 영혼을 울린다. 여기에다 유지태-김지수-엄지원 세 주연배우는 각기 다른 색깔로 김 김독의 특별한 감성에 화답한다. 가을에는 멜로 영화라는 말이 있다. 또 모두가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바로 영화 '가을로'가 두 박자를 갖추었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