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의 회생, LG배에 건다

진퇴의 기로에 놓인 한국 바둑이 절체절명의 시험대에 선다. 30, 31 양 일간 ‘서머셋 팰리스 서울’에서 열릴 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조선일보 주최) 8강전 얘기다. 올해 한국 바둑은 후지쓰배(박정상)를 제외한 모든 국제 대회 우승권에서 탈락한 상황. 이번 무대를 통해 회생이냐, 뒷걸음질 고착이냐 여부가 결정될 판이다. 2억5000만원의 최고 우승 상금을 향해 4강행 티켓을 겨룰 기사는 한국 3, 중국 4, 대만 1명.
이창호(31) 조한승(24) 홍민표(22) 등 한국 팀 트리오는 체급(?) 분포부터 절묘하다. 이창호가 국제 공식 타이틀만 20회에 걸쳐 석권한 ‘수퍼 헤비급’ 챔피언이라면, 최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분루를 삼켜온 조한승은 국제 무대의 ‘라이트 헤비급’쯤 될까.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해 오다가 유독 이번 대회서 7연승(통합예선 포함)으로 대폭발 중인 ‘미들급’ 홍민표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이창호는 중국 후야오위(胡耀宇·24)와 만난다. 메이저급 국제 대회 4강에만 두 차례나 오른 만만치 않은 강자다. 중국 랭킹 4위인 그는 이번 대회서 조훈현과 야마시타(山下敬吾)를 꺾고 올라왔다. 이창호는 후야오위에게 몇 차례 주요 고비에서 일격을 당했지만 상대 전적에선 5승 3패로 앞서있다. 문제는 그의 컨디션. 최근 국내 무대서 4연패의 슬럼프에 빠져있다. 중기적으로도 올 들어 대부분의 국제 기전 우승권에서 모두 탈락하고 LG배와 삼성화재배 8강만 남긴 상황이어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조한승은 7회 대회 이후 연속 3년간 4강에 오를 만큼 LG배와 인연이 많은 기사. 하지만 번번이 1승이 부족, 병역 특례 혜택에서 벗어난 바 있어 와신상담의 재도전이다. 최근 5연승 포함 41승 17패(다승 11위·승률 7위)를 달리는 등 컨디션도 괜찮다. 다만 상대인 천야오예(陳耀燁·17) 역시 전기(前期) 결승에서 구리(古力)와 풀 세트 접전을 펼친 이후 자국 랭킹 11위까지 수직 상승한 강자여서 쌍방 낙관 불허의 백중전이 되리란 전망.
국내 랭킹 26위의 홍민표는 이번 대회 ‘태풍의 눈’이다. 그가 만약 디펜딩 챔프 구리(23)를 잡는다면 대회 최대의 이변이자 한국 바둑계 최고의 수확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국 저우허양(周鶴洋)과 대만 린즈한(林至涵)을 따돌리고 8강에 안착한 뒤 홍민표의 인터뷰 첫 마디는 “구리에게 설욕하겠다”였다. 그는 2004년 제9회 삼성화재배 때 구리를 딱 한 차례 만나 첫 판 탈락의 아픔을 겪었었다. 구리는 중국 내 현역 4관왕이자 톱 랭커.
이 밖에 이세돌을 디딤돌 삼아 올라온 중국 랭킹 2위 셰허(謝赫·22)와, 대만 바둑계를 장기 집권(?) 중인 저우쥔쉰(周俊勳·26)이 또 한 장의 4강 티켓을 다툰다. 첫날인 30일 조한승ㅡ천야오예 전과 셰허ㅡ저우쥔신 전이, 31일엔 이창호ㅡ후야오위 및 홍민표ㅡ구리 전이 치러질 예정. 2년 연속 ‘남의 잔치’로 끝났던 LG배가 올해는 주최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