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김수로표 코미디’는 잊어라

‘김수로표 코미디’에 어떤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잔혹한 출근’(11월 2일 개봉)은 ‘이중 유괴’라는 자극적 소재의 코믹 서스펜스. 사채 빚을 갚으려고 부잣집 여고생을 유괴한 샐러리맨 동철(김수로)이 범죄 직후 자신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유괴당한다는 황당한 설정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특유의 개인기나 슬랩스틱보다는 딸 잃은 아빠의 감정에 주력하고, 영화도 후반 반전을 통해 ‘코미디’보다는 ‘서스펜스’에 무게중심을 둔다. 24일 그를 만났다.
―의식했나. 코미디 영화인데, 스크린 속에서 당신은 거의 웃지 않는다.
“자제하려고 노력했다. 슬랩스틱이나 개인기는 사실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또 그런 코미디는 너무 많다. 지금은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더 중요했다. ”
―일종의 변신에 대한 강박? 혹은 자기복제에 대한 우려?
“꼭 그런 건 아니다. ‘잔혹한 출근’은 코미디의 탈을 쓰고 있지만 비장의 무기를 숨겨놓은 영화다. 이렇게 정리하자. 내 몸과 얼굴을 보면 사람들은 코미디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쥐고 있는 무기는 그때 그때 달라야 한다. 잽, 어퍼컷, 크로스 카운터를 그때 그때 써야지.”
―하지만 ‘김수로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간 관객은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연기를 보고 누구는 ‘정극’ 같다고 하더라. 사실 관객이 원하면 소위 ‘쌈마이 코미디’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난 ‘더 웃겨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번 연기도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관객이 공감해 줄 거라고 확신한다.”
―코미디를 벗어나 아예 장르 자체를 바꿔보겠다는 욕심은 없나.
“아직까지는. 나는 100% 확신이 들어야 어떤 선택을 하는 체질이다. 장르를 바꿀 때 내가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100% 확신이 없다. 소심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 대신 확신이 들어서 한 일은 지금까지 모두 성공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난 스트레스가 없다.”
―이 영화가 300만, 400만, 500만을 넘어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작품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는데.
“부귀영화는 농담이고. 건방진 소리지만, 난 ‘1000만 영화’ 해 본 적이 없다는 걸 행복하게 생각한다. 한 번 기록 세웠다가 그 다음에 안 넘으면 얼마나 섭섭하겠나. 차라리 늘 안정적으로 3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다. 1000만 영화 대신 300만짜리 영화 3편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늘 하느님께 기도한다.”

― ‘특수 훈련’은 요즘도 여전한가(그는 대치동에 개인사무실을 내고, 연기자를 꿈꾸는 후배 예닐곱 명과 함께 아침 10시에 매일 출근한다. 시나리오 분석과 연기를 함께 ‘훈련’한다).
“물론.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우형사와 김형사도 우리 ‘스터디 방’ 출신이다. 자랑 같지만, 영화계 배우 오디션 볼 때 최근 1등을 독차지하고 있다.”
―부산영화제 화제 하나. 개막식 레드카펫 때, 당신이 입장하는 순간 박수소리가 가장 컸다.
“너무 좋고 고마웠다. 그룹 신화나 G·O·D가 된 느낌이었다.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서라도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환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너무 ‘모범답안’ 같은 느낌인데.
“농담 아니다. 나를 믿고 따르는 동생이나, 믿어주는 형들에게 최선을 다하자는 게 생활 신조다.”
―대학 때 처음 만나 10년 넘게 사귄 연인(이경화·SBS 공채탤런트)과 지난 1일 결혼했다. 어떤가. 결혼의 현실은. 스트레스받는 일도 많을 텐데.
“한참 밖에서 일하는데 왜 안 오느냐고 전화 올 때(웃음). 하지만 연애와 달리, 결혼은 정말 길동무를 찾는 일인 것 같다. 내가 늙고 치매에 걸려 벽에 ×칠을 하게 되더라도 그걸 닦아줄 수 있는 여자다. 그걸 생각하면, 일찍 일찍 들어가자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