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듯 인간은 '사랑의 마법'에 철저히 순종한다. 필요없다고 처절하게 몸부림 칠지라도 '사랑의 요술'은 이내 꽁꽁 언 마음을 녹인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찬양한다. 고귀하고 영롱한 빛을 토해내는 파노라마 같다며. 깊어가는 가을의 길목에 오묘한 사랑의 색깔을 가진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사랑따윈 필요없어'(제작 싸이더스FNH)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다. 영화도 부정의 힘을 빌어 긍정을 그리고 있다.
2002년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BS 방송의 10부작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여름'이 원작이다. 특히 스무살 성년이 된 문근영의 첫 작품이어서 촬영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세상을 보지 못하는 류민(문근영)은 삶 자체를 부정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지만 장식품에 불과하다. 한데 어느날 16년전 헤어진 오빠가 불쑥 나타난다. 오빠를 사칭해 그녀의 유산을 노리는 줄리앙(김주혁)이다. 아도니스 클럽 최고의 호스트인 그는 고객의 자살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후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클럽 퇴출과 함께 28억7000만원의 빚 뿐이다.
바로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줄리앙은 우연히 걸려온 한 통의 전화속에서 류민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빚을 갚을 수 있는 고기를 낚은 줄리앙과 세상이 지긋지긋한 류민의 변화무쌍한 사랑이 시작된다.
이철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영화는 그의 장편 데뷔작. CF와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답게 영상미가 화려하다. 화면 속의 풀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또 보성의 녹차 밭에 세워진 꿈의 저택, 우포늪의 반딧불이, 빗속의 향연도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다. 스토리 라인은 둔탁해 세련미가 떨어진다. 한껏 영상에 멋을 부리다 자기 꾀에 빠진 형국이다. 그래서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래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것은 문근영과 김주혁의 투혼이다. 문근영은 어느덧 소녀의 티를 훌훌 벗어던져 여인의 향기가 물씬 흐른다. 눈물 연기 또한 순도가 높다.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배우'로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다. 김주혁의 연기도 여성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냉온이 교차하는 카리스마의 흐름은 자연스러웠고, 사랑을 위해 내달리는 장면에선 숙연해진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스포츠조선 김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