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신부’가 어른의 사랑을 하려니…
입력 : 2006.11.08 00:35 | 수정 : 2006.11.08 00:35
'사랑따윈 필요없어'
눈먼 상속녀와 그 돈 노리는 남자…삿포로 설원·우포늪 등 영상 탁월
영화를 보는 내내 반복해서 들었던 의문은 문근영에 관한 것이었다. 왜 그녀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고유의 재능(그녀는 안티팬이 없는 ‘국민 여동생’으로 불려 왔다)과 매력을 뒤로하고 설익은 어른의 열매를 욕심냈던 것일까. ‘사랑 따윈 필요 없어’(9일 개봉)에서 스무 살 근영은 숙녀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어린 신부’의 외모와 발성으로, 어른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여기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고 굳게 믿는 두 명의 남녀가 있다. 28억7000만원의 빚을 한 달 안에 갚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남창(男娼) 줄리앙(김주혁).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눈먼 소녀 류민(문근영). 그녀의 유일한 혈육은 16년 전 집을 떠난 오빠 류진인데, 두 번의 우연이 겹친다. 줄리앙과 류진은 둘도 없는 친구였고, 때맞춰 류진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강남 제일의 호스트바 아도니스에서 ‘넘버 원 호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줄리앙은 스스로를 류진으로 속이고, ‘누이동생’을 찾아간다. 사채업자 광수(이기영)가 뒤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고, 앞에서는 류민의 재산을 탐내는 이선생(도지원)이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랑 따윈 필요 없어”로 시작했던 오누이는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연인으로 급격하게 정체성을 바꿔 간다.
끝없이 펼쳐진 삿포로 설원에서의 장례식이나 초록으로 가득한 보성 녹차밭 한복판의 대저택은 그 자체로 대단한 스펙터클. 실제로 이 영화의 공들인 영상은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가 가진 작지 않은 미덕이다. 창녕 우포늪의 야생화와 반딧불이, 어린이대공원의 만개한 벚꽃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당장 객석을 벗어나 현장을 찾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영화에서 느끼는 가장 큰 난감함은, 포장과 포즈에 가려 이야기의 진실성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리앙과 류민의 감정이 사랑으로 변해갈 때도, 영화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과 ‘숙녀 문근영’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나마 어느 한쪽의 이미지조차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키스신이나 베드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둘의 사랑(오누이의 사랑이 아니라)을 공감하게 만드는 최소한 설정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또 사채의 채무기한을 확인할 때도 앤티크 회중시계를 꺼내야 하는 유별난 취향, 느닷없이 등장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 심지어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조차 그림 같은 기찻길 위로 올라가게 만드는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은, 이 멜로드라마가 진심보다는 장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심을 반복하게 만든다. 혹시라도 2006년의 한국 상업영화가 20대 여성 관객에게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리한 대로 오독(誤讀)한 것은 아닐까. 최신 트렌드를 소비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두 사람의 비극적 사랑에 승부를 걸었던 진실한 신파로 스스로의 장르를 설정하고 있었는데.
여기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고 굳게 믿는 두 명의 남녀가 있다. 28억7000만원의 빚을 한 달 안에 갚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남창(男娼) 줄리앙(김주혁).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세상에 홀로 남겨진 눈먼 소녀 류민(문근영). 그녀의 유일한 혈육은 16년 전 집을 떠난 오빠 류진인데, 두 번의 우연이 겹친다. 줄리앙과 류진은 둘도 없는 친구였고, 때맞춰 류진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강남 제일의 호스트바 아도니스에서 ‘넘버 원 호스트’로 이름을 날리던 줄리앙은 스스로를 류진으로 속이고, ‘누이동생’을 찾아간다. 사채업자 광수(이기영)가 뒤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키고 있고, 앞에서는 류민의 재산을 탐내는 이선생(도지원)이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도 “사랑 따윈 필요 없어”로 시작했던 오누이는 “사랑밖에 난 몰라”라는 연인으로 급격하게 정체성을 바꿔 간다.
끝없이 펼쳐진 삿포로 설원에서의 장례식이나 초록으로 가득한 보성 녹차밭 한복판의 대저택은 그 자체로 대단한 스펙터클. 실제로 이 영화의 공들인 영상은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가 가진 작지 않은 미덕이다. 창녕 우포늪의 야생화와 반딧불이, 어린이대공원의 만개한 벚꽃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당장 객석을 벗어나 현장을 찾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영화에서 느끼는 가장 큰 난감함은, 포장과 포즈에 가려 이야기의 진실성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줄리앙과 류민의 감정이 사랑으로 변해갈 때도, 영화는 ‘국민 여동생 문근영’과 ‘숙녀 문근영’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나마 어느 한쪽의 이미지조차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키스신이나 베드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둘의 사랑(오누이의 사랑이 아니라)을 공감하게 만드는 최소한 설정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또 사채의 채무기한을 확인할 때도 앤티크 회중시계를 꺼내야 하는 유별난 취향, 느닷없이 등장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 심지어 자살을 기도하는 장면조차 그림 같은 기찻길 위로 올라가게 만드는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은, 이 멜로드라마가 진심보다는 장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심을 반복하게 만든다. 혹시라도 2006년의 한국 상업영화가 20대 여성 관객에게 상당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리한 대로 오독(誤讀)한 것은 아닐까. 최신 트렌드를 소비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사랑 따윈 필요 없어’는 두 사람의 비극적 사랑에 승부를 걸었던 진실한 신파로 스스로의 장르를 설정하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