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성의 스타라운지] (12) 영화감독 박찬욱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은 싱글벙글이다. 영화 한두 편 만든 것도 아니지만 이번엔 특별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아빠와 딸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소매를 걷어붙였으니 더 바랄 게 없다. '친절한 금자씨'의 15세 관람가를 확신하다가 좌절한 경험 때문에 기쁨 두 배라고나 할까. '싸이보그~'는 박 감독의 새로운 시도다. 처음으로 만진 청춘영화에다 가수 비(정지훈)를 또 처음으로 스크린에 내놓는 작품이기도 하다. 물론 메가폰을 잡은 이래 처음으로 받은 12세 관람가 판정 또한 박 감독에게는 새로운 이정표다. 거리의 노란 은행잎이 유독 짙게 느껴지는 바람 부는 날 광화문의 한 갤러리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카메라로 세상을 담아내는 박 감독이지만 정작 자신이 카메라에 담기는 건 쑥스러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나름대로의 순수가 참으로 다양하고도 묘한 작품을 그려내는가 보다 싶다. 그에게서 이런저런 영화 얘기 좀 들어봤다. 영화찍으면서 임수정 굶기는게 가장 힘들어 날고구마 + 사과 몇쪽으로 연명 …5kg 빠져 시간날 땐 가족과 해외여행 다니며 푹 쉬죠 -이번 영화는 가수 비를 기용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끄는데, 맨 처음 비는 어떻게 만났습니까. ▶ 비라는 존재를 안 건 박진영씨를 통해서였어요. 여러 사람과 밥 먹는 자리에서 박씨와 인사를 나눴는데 CD를 한 장씩 돌리더라고요. 표지에 '비'라고 되어 있어서 앨범 타이틀인 줄 알았어요. 한데 가수라고 해서 '이상한 이름도 다 있구나' 그러고 말았죠. 그게 아마 비가 첫 앨범을 내고 막 활동을 시작할 때였을 겁니다. -비의 연기력은 어떻게 찾아냈나요. ▶ 영화 시상식장에서 이효리와 춤추는 걸 봤어요. 장내를 압도하는 에너지에 반했죠. 춤만 잘 추는 게 아니라 마이클 잭슨처럼 연기의 일종으로 보였어요. 뮤지컬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요. 비가 영화 속에 담겨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시상식장의 여배우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을 보면서 '참 매력있는 청년이구나' 했죠. 하지만 '저 청년과 언제 일 하겠어' 하고 말았어요. -한데 어떻게 인연이 이어졌습니까. ▶' 친절한 금자씨' 후시녹음 때 비가 놀러왔어요. 그래서 일 끝나고 같이 한 잔 했죠. VIP 시사회 때도 한 잔 했고. 송강호나 최민식이 예뻐해 신뢰도 갔어요. 청춘영화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비를 가장 먼저 떠올렸죠. 다른 배우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때의 이영애와 비슷한 경우죠. -비를 알고 보니 어떻던가요. ▶구김살 없고, 때 타지 않았고, 그늘도 없고, 솔직했어요. 그냥 보이는 그대로였어요. 그 너머에 숨겨진 어두운 감정도 없었고요. 액면 그대로의 성격, 그걸 영화를 통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비의 연기 실력은 어땠나요. ▶감각이 좋더라고요. 연기는 타이밍 감각이 중요한데 머리가 좋아 금방 말귀를 알아듣고 뭘 원하는지 금방 캐치해 냈어요. -비의 파트너로 임수정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비가 제의를 했어요. 임수정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저도 자연스럽게 동의했죠. -'싸이보그~'는 어떤 영화인가요. ▶소꿉놀이 같은 영화예요. 입원 병동은 작은 사회고, 그 안에서 정신적으로 미숙한 어린애 같은 환자들이 소꿉장난의 역할놀이 같은 걸 알콩달콩 펼쳐가는 얘기죠.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아 화제가 됐는데요. ▶ 보수적인 시각으로 15세 관람가로 매길까봐 걱정했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해냈다는 뿌듯함이 생겨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많이 개방적이고 전향적이 됐다는 얘기죠. 밝고 가벼운 영화를 염두에 두고 쓰다 보니 잔인한 폭력은 어울리지 않은 영화가 된 것 같아요. 다음엔 전체관람가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요. ▶ 수정이를 굶기는 일이었어요. 밥을 먹지 않고 말라가는 사람을 연기해야 하는 수정이에게 날고구마와 사과 몇 조각만 먹이며 몇 달을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죠. 귀엽고 사랑스러운 수정이가 그러니 더 안쓰러웠죠. 가뜩이나 말랐는데. 최종적으로 5㎏이나 빠졌어요. 수정이의 5㎏은 설경구의 5㎏과는 다르거든요. 원래 맛있는 것도 먹고, 술도 마시면서 영화 얘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이번에는 수정이 때문에 주로 차를 마셨죠. -할리우드에서 '설국열차'라는 영화를 제작할 계획인데. ▶정해진 게 별로 없어요. 그냥 원작에 대한 판권만 사둔 상태예요. 제가 제작을 맡고 봉준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는데 봉 감독이 중간에 다른 영화 한 편을 찍기 때문에 2009년이나 2010년쯤 완성될 예정입니다. -꼭 영화를 함께 만들어보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요. ▶많죠. 전도연 김혜수 문근영 김지수 수애…. 남자 배우들에게는 관심 없어요.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가나요. ▶내년 가을쯤 촬영을 시작할 겁니다. 예전에 써둔 시놉시스인데요, 정서경 작가가 초고를 쓰기 시작한 지 이제 일주일 됐어요. 흡혈귀 영화입니다. -시간이 나면 주로 뭘 하면서 지냅니까. ▶ 처자식 데리고 해외여행도 다니고, 다음 작품 준비도 하고 그러죠. 책도 읽고, 술도 마시고…. 운동은 싫어합니다. 귀찮아요. 시간도 아깝고. 잘해야 아내와 빠른 걸음으로 동네를 걸어다니는 정도인데요. 그것도 아내와의 대화 때문에 하는 거예요. 혼자 걸을 때는 음악을 듣죠. 그 역시 음악감상 시간이지 운동 시간은 아니에요. (스포츠조선 최재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