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디파티드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도 커지는 경험은 영화에서 유달리 도드라지지만, 마틴 스코세지 연출에 잭 니컬슨,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맷 데이먼 트리오가 빚어내는 ‘디파티드’(23일 개봉)는 그 흔치 않은 예외다.
익히 알려진 대로 홍콩 영화 ‘무간도’(양조위, 류덕화 주연)를 리메이크한 이 할리우드 액션 누아르는, 원작 캐릭터들이 보여줬던 정체성의 고민보다, 배신과 욕망의 스펙터클에 무게중심을 두고 152분간의 비극 서사를 풀어낸다. 둘 중 어느 것을 선호할지는 취향에 달려 있겠지만, 스코세지가 그려내는 이 조폭(組暴) 군상(群像)은 원작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지옥도다. 플롯이나 아이디어를 제외하면, ‘비열한 거리’나 ‘갱스 오브 뉴욕’ 등 본인 전작과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게 더 빠르고 수월할 것이다.

무대는 홍콩의 부두에서 보스턴으로 옮겼다. 이 회색 도시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은 아일랜드 마피아. 악의 화신으로 이름난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컬슨)를 잡기 위해, 보스턴 경찰청 퀴넌 서장은 남몰래 꾀를 낸다. 어두운 집안 출신으로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빌리(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코스텔로 패거리에 잠입시킨 것. 하지만 마피아도 놀고 있지는 않았다. 열두 살 때부터 코스텔로의 용돈을 받고 컸던 영리한 콜린(맷 데이먼)의 신분을 세탁해 경찰학교에 입학시킨 것.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콜린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보스턴 경찰청에 배치받는다. 이제 경찰과 마피아는 서로의 신분을 뒤바꾼 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스파이의 삶을 살아간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는 ‘디파티드’의 사전적 의미처럼, 스코세지의 영화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춘다. “죽은 뒤에도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지옥”이라는 뜻의 ‘무간도’가 스스로의 신분을 속여야 했던 내면에 집중했다면, ‘디파티드’의 주인공들은 그 부분을 일단 괄호 속에 넣어 둔 채, 폭력의 세계에 몸을 던진다. 보다 비열하고 보다 차가워진 ‘디파티드’의 캐릭터들이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는, 대단한 긴장감으로 객석과 스크린의 간격을 좁힌다. 악마가 현현(顯現)한 듯한 잭 니컬슨도 명불허전이지만, 불안을 자양분 삼아 갈등하고 분노하는 디캐프리오의 연기는 그의 이름에 의문을 갖던 관객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에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