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집과 두터움

〈제7보〉(81~94)=바둑은 ‘집’의 승부지만 ‘집’만으론 이길 수 없다는 데 묘미가 있다. 두 눈을 못 낸 대마는 사로잡힌다는 룰 때문이다. 도처에 원군(援軍)을 배치해 두면 공격을 하면서 집이 생긴다. 이른바 ‘두터움’이다. 지금 이 바둑의 형세는? 우상귀와 우하귀 일대에 큰 집을 확보한 흑이 앞선 듯 보이지만 백의 중앙 두터움이 막강하다. 좌변 흑이 아직 두 눈을 못 낸 상황이어서 오히려 백이 재미있다는 중론.
적세(敵勢)가 강한 곳에선 81처럼 붙여가는 ‘기대기’ 수법이 유력하다. 참고 1도는 아예 한 눈도 없는 형태. 85로 안형(眼形)을 꾀할 때 86으로 눌러간 수가 좋았다. 87로 88에 늘 수가 없다. 백이 즉각 참고 2도 2, 4로 공격하면서 A의 절단을 노려올 게 뻔하기 때문. 백은 느긋하게 88로 챙긴다. 두터움을 활용한 공격의 효과다.
흑은 89로 백의 도강(渡江)을 막으랴, 대마의 눈도 마련하랴 백의 두터움 속에서 93까지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아직도 두 눈이 확실하지 않다. 백은 여기서 공격을 보류하고 갑자기 94로 창 끝을 돌렸다. 이 수는 어땠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