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맛따라/금산 서대산] 닭·오리·미꾸라지가 인삼을 만나다

산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올라야 한다. 등산의 개념으로 오르는 산행은 결코 속도경기가 아니다. 특히 조망이 아름다운 산을 오를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안내산행 버스편으로 산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산에서 쉽게 만나게 된다. “산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 본다. “오를 때는 앞사람 등산화 뒤꿈치만 봤고, 내려올 때는 앞사람 뒤통수만 봤지예” 라는 답을 들을 때는 딱한 생각이 든다.

산행이 속도경기가 아닌 이상, 산은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올라야 한다. 산행을 무슨 속도경기인 양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해서야 별 의미가 없다. 빨리 올라갔다가 빨리 내려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류의 산행들을 하고 있다. 참으로 딱한 산행이다. 차를 타고 산을 둘러 보라. 산 능선은 보았겠지만, 산속의 나무들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가며 산을 올라 보자. 산속의 나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눈으로 들어온다. 더 천천히 걸어보면 흙내음 들꽃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빨리 달려가고 빨리 올라가는 것만이 최선은 아닐 것이다. 빨리 달려가 본 종착점과 빨리 올라본 끝은 어디일까. 봄에는 봄꽃이 피고 가을에는 가을꽃이 피어나듯 우리의 인생도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겠다.

월간山에 ‘산따라 맛따라’ 연재를 처음 시작한 것이 1997년 1월호였다. 만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10년에 세월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1년, 아니면 한 달 사이에도 세월이 바뀔 만큼 세월의 변화는 빨라졌다. 원고지나 디스켓에 담은 원고를 편집자에게 갖다 주던가 팩스로 송고하던 시절에서 지금은 글만이 아니라 사진까지도 이메일로 보내면 되는 시절이 되었다.

편리하기야 하지만 얼굴을 마주치며 술잔이라도 부딪치고 인간 내면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 아닐 수가 없다. 늦가을, 서대산 깊은 산속에서 지난 10년을 천천히 한번 돌이켜봤다.


서대산 휴게소
손님과 식당이 함께 만족

푸른 하늘을 닮았다는 산, 서대산으로 취재 갔던 날 저녁, 서대산드림리조트 정대준 사장은 리조트 안에 있는 몽골 게르 한 동을 내주겠다고 제의했다. 깊은 산속의 늦가을 바람은 차가웠고, 주중의 깊은 밤, 리조트는 한산했다. 사실은 이런 계절, 이런 분위기가 좋다. 좀처럼 갖기 힘든 기회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혼자 깊은 사색에 잠길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냐.

5평의 몽골 게르 한 동을 혼자 차지하고 편안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창문을 열었더니 아! 이 상쾌한 공기맛! 도시의 공기맛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리조트에서 직영하는 식당 ‘서대산휴게소(041-753-2662)'에서 아침상을 차려 놓았다는 전갈이 왔다. 이 식당은 300명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주방장 이춘자씨(56)가 차려준 된장찌개와 멸치우거지찜 맛이 유별났다. 멸치우거지찜은 옛부터 우리 선조들이 즐겨 만들어 먹던 토속음식이다. 배춧잎이나 무잎, 파와 마늘에 내장을 빼낸 멸치를 된장국물에 넣고 푹 고은 찜으로, 하산길 식사손님들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이 주방장의 자랑이다.

서대산드림리조트는 전체 면적이 97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이라 농사 지을 땅이 충분하고, 해발 500m 이상 고냉지에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채소들로 식탁을 꾸민다는 주방장의 긍지가 대단했다. 단체 손님 위주의 식당이라 적은 이윤으로 푸짐한 상을 차릴 수 있는 박리다매가 특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손님들과 식당이 함께 만족해 할 수 있는 것이 늘 즐겁다며 이 주방장은 활짝 웃는다.

된장찌개·소고기우거지해장국 각 5,000원, 도토리묵무침 7,000원, 인삼갈비찜(1인분 250g)·인삼양념삼겹살(1인분 200g) 각 8,000원.


할머니인삼추어탕
추부 추어탕 업소 중 명업소

서대산이 면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는 인구 7,500여 명의 금산군 추부면에는 추어탕집이 40여 곳이나 된다.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어느 집 추어탕 맛이 가장 좋으냐고. 돌아온 대답은 "모두가 다 잘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낭패다. 한 집쯤은 골라서 소개해야 할텐데….

그래서 첫번째 날은 외지에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는 두 집을 골라 그 중 한 곳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뚝딱'했다. 어딘가 미진했다. 둘째 날도 마찬가지. 드디어 세번째 날에야 제대로 찾아 들었다. 그 집이 바로 면사무소 소재지 파출소 맞은편에 있는 '할머니인삼추어탕(041-752-5049)'이었다.

옥호 그대로 72세가 되셨다는 환한 얼굴의 박수경(朴壽京) 할머니가 낯선 객을 반갑게 맞는다. 할머니의 편안한 모습이 살아생전의 어머니를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추어탕은 왜 추부인가?' 하는 의문도 풀 수 있었다. 지금 추부에 있는 수많은 추어탕집들은 미꾸라지를 강경의 양식장 것을 가져다 쓴다고 했다. 할머니의 말씀은 원래 “추부 추어요 금산 인삼이라”는 설명이었다. 할머니의 확실한 어릴 적 기억으로는 바로 인접 지역인 금산에서 잡힌 미꾸라지가 가늘고 보잘 것 없는 데 반해 추부에서 잡힌 미꾸라지는 굵고 둥글둥글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동네사람들은 추부에서 잡힌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먹게 되었고 한 집 두 집 추어탕 전문점 간판이 걸리게 되었다는 것.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추부면 마전리는 멀지 않는 거대도시 대전 사람들의 식도락 코스가 되었고, 지금은 이곳 손님의 80% 이상이 대전 사람이라고 한다.

강정식품으로 큰 인기인 추어탕은 비린내와 흙내가 나지 않는 것이 요체다. '할머니인삼추어탕' 집의 박수경 할머니가 끓여내는 추어탕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추어탕의 정형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니 언제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또 한 가지 추어탕마을인 추부면은 깻잎 산지로, 연간 매출액이 80억이나 된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재배한 깻잎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있는 추부의 깻잎은 서울 가락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이 지역 추어탕집 어느 집에서나 우리나라 최상의 깻잎무침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즐거운 식탁이 아닐 수 없다.


이안하우스
자연의 순수함 그대로

사람의 손길로 때 묻지 않은 처녀림과 맑은 계곡을 자신의 정원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 여인이라면 그 여인의 심성은 알만하겠다. 서대산을 오르는 추부면 성당리, 서대산드림리조트로 가는 길가에는 문을 연지 이제 만 1년이 되었다는 ‘이안하우스(041-753-4753)’가 눈에 띈다. 얼른 보기에는 돈 많은 도시사람이 산 좋고 물 맑은 곳에다 집을 짓고 식당업을 하는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안주인을 만나보면 내용이 달라진다. 큰 도시에서 살다 왔다고는 밝혔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주는 분이 이 집의 안주인 이수옥(45)씨다.

지난해 12월17일 문을 연 집이라 시설이 깨끗하고 산뜻하다. 1층에서는 한방오리백숙(30,000원)과 돌솥정식(10,000원)을 차려내고, 2층은 고급스런 경양식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3층은 세미나실과 안락한 펜션으로 단체손님들을 모신다. 특히 ‘이안하우스’의 돌솥정식은 한정식에 준하는 상차림으로 홍어회와 묵은 김치가 따라 나온다. 이런 까닭으로 대전지역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것이 업소측의 설명이다.

늦가을 주중의 늦은 저녁시간에 넓은 집마당 주차장이 손님들이 타고 온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이 업소의 빠른 성장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600평의 넓은 부지에 넘치는 주차공간과 도시사람 누구나가 맨발로 밟아 보고 싶어하는 넓은 잔디마당을 조성해 놓았다. 옥호 ‘이안’은 아내(李씨)와 남편(安씨)의 두 성씨를 따 온 것이라 한다.

중앙식당
'뚝배기 보다 장 맛'

서대산에서 동쪽으로 솟아 있는 장룡산은 옥천이 자랑하는 옥천의 명산이다. 옥천에서 만난 여러 사람이 장룡산 운해의 절경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렇지만 늘 상주하는 입장이 아니고서야 어디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겠는가. 취재 가던 날 운 좋게도 대전MBC 보도국장을 역임한 정희태 선생을 대전에서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정 선생이 태어난 곳이 바로 장룡산 자락 군서면 동평리라고 한다.

선생께서는 생가가 있는 마을로 접어들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50년도 더 지난 고향마을의 모습과 한여름 긴 긴 하루를 금천계곡 물가에서 놀던 기억을 반추하는 노신사의 목소리에서는 한평생을 살아온 인생의 편린들이 묻어져 나왔다. 그 때 그 시절에는 계곡에 흐르는 물을 그냥 마시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37번 국도가 달리는 큰길가 동평리는 아직 50년 전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작은 마을에는 ‘모닝커피’와 ‘도라지위스키’가 나올 법한 다방이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어느 가수가 불렀던가.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의 노랫말을 금방 떠올리게 하는 그런 다방이었다.

다방 앞쪽에 ‘중앙’이라는 다방 이름과 같은 ‘중앙식당(043-732-4009)’으로 들어갔다. 아주 허름한 집인데, 이 집을 추천해준 분의 깊은 뜻을 바로 알게 해 준 것은 방안에 걸려 있는 사진들이었다. 키나발루(4,101m) 정상과 국내외 여러 산에서 찍은 주인의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옥천의 골수 산꾼이자 옥천장룡산악회 회장을 역임한 신옥준씨(67)의 집이었다. 장룡산악회는 1990년에 창립, 62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는데, 월 1~2회의 정기산행과 여러 차례의 해외산행의 기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식당은 부인 유병윤씨(61)가 맡아 운영하고 있는데 이 집의 냄비갈비는 다른 업소에서는 흉내도 내지 못한다는 특별한 메뉴다. 집에서 기른 돼지를 잡아 양은냄비에 닭도리탕처럼 차려내는 돼지갈비 맛에 매혹되지 않는 손님이 없다는 소문으로 현지 옥천 일대만이 아니라 멀리 대전에서도 식도락 원정을 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집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장룡산 산행나들목 자연휴양림 앞쪽 계곡가에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장용산낙원가든(043-732-8984)’이 있다. 오리고기와 닭고기를 차려내는 업소로, 이 집 역시 옥천만이 아니라 대전을 위시 인근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단골로 찾는 집으로 크게 알려져 있었다. 민박이 가능하고 300여 평의 마당에서는 야영도 할 수 있다.


강변산닭식당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한 차례도 아니고 여러 차례 대전 근교 산 취재길에 안내와 교통편의를 제공해 준 대전의 진달래산악회 이춘화 회장과 차정숙, 오영희 회원이 엉뚱한 제의를 했다. 점심 한 턱을 ‘쏘겠다’는 것이다. 취재할 집을 찾아가서 책에 실을 음식사진을 찍고 나면 돈 내지 않고 사진에 담긴 음식은 의무적(?)으로 먹어야만 하는 것인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금산 땅이기는 하지만 위치가 서대산보다는 대둔산이 더 가까운 곳이라 취재라는 업무를 떠나서 한 차례 모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거절할 이유나 명분도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대전과 충남에서 크게 소문이 나 있는 ‘강변산닭식당(041-752-8511)’이다. 소재지는 금산군 복수면 신대리였지만 서대산과 대둔산까지의 거리는 오십보 백보였다. 집주인 황해자씨(49)가 2002년 충남향토음식과 요리경연대회에서 인삼오리전골로 우수상을 수상하고, 충남우수조리사 인증서를 받은 집이라 황 조리사가 차리는 음식을 대접하고팠다는 것이 이유였다. 수상작품 인삼오리전골은 우선 보기가 좋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 않는가. 맛에 대한 품평을 한다는 것은 조리사에 대한 결례가 될 것 같았다. 인삼주까지 곁들인 큰 음식상 하나를 다 비우고 나오면서 일행 모두가 합창을 했다. “정말 소문 그대로네요!”

 

금산인삼주
세계명주 반열에 오른 전통 발효주

금산은 전국 인삼의 80% 이상이 거래되는 인삼유통의 중심지다.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의 도홍경(456-536)이 쓴 신농본초경집주에는 ‘인삼은 백제삼이 좋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금산 인삼의 재배역사는 1,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러한 인삼 역사의 땅 금산 사람들의 금산인삼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이봉직의 시 ‘금산 사람들’에는 ‘뿌리가 금산인 사람들은 / 짧은 안부 인사 한 마디에도 / 인삼 내음이 깃들어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만큼 금산 사람들에게는 금산인삼 내음이 자신들의 몸속에 배여 있고 금산인삼의 정기가 피속으로 흐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금산 사람들은 금산인삼을 금종삼이라 하여 다른 지역 인삼들과는 구별을 하고 있다. 대단한 긍지다. 금종삼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유달리 쓴 맛을 낸다는 것이다. 이 쓴맛을 내는 금종삼이어야 제대로 된 인삼주의 맛을 빚어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배경의 땅에서 인삼명주가 탄생했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겠지. 금산인삼주는 조선시대 사육신 가운데 한 분인 김문기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것이다. 16대 후손인 김창수 명인이 이를 계승하여 지금은 세계의 명주반열에 올려놓았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서 금산인삼주가 공식건배주로 지정되었던 사실이 이 술의 명성을 밝혀 놓고 있다.

금산인삼주는 전통발효주다. 쌀과 누룩에 인삼을 갈아 넣은 다음 저온(18~22℃)에서 숙성시킨 술이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인삼 자체에 소주를 부어 우려낸 침출주와는 다른 술이다. 술속에 인삼이 담겨 있지 않는 술이 바로 금산인삼주인 것이다.

금종삼만으로 금산인삼주를 빚고 있는 금산인삼주 김창수(金昌秀·65) 대표는 무형문화재 제19호와 전통식품명인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분이다. 명인의 혼을 담아 빚은 금산인삼주야말로 몸에 이로운 우리나라 술의 대표주자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겠다. 이런 가운데 김창수 명인은 한국전통민속주협회 회장직까지 맡아 전통민속주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경북대 산악회 OB·sanchonmira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