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장고의 심리학

〈제6보〉(73~89)=프로들은 어떨 때 장고(長考)에 빠질까. “여러 갈래 앞에서 선택이 어려워 수읽기를 거듭할 때”. 교과서적인 모범 답안이다. 하지만 장고할 때의 내부 심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착점을 미루는 것은 집중이 잘 안돼 딱 부러지는 결론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고는 사고 회로(回路)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장고 끝의 악수(惡手)’란 말은 기실 얼마나 과학적인가.

73은 17분을 투입한 이 바둑 최 장고수. 동시에 판을 버려놓은 대 완착이었다. 검토실에서 “‘가’에 두면 흑이 좋다”(한국), “참고 1도로 흑의 우세”(중국)란 말들이 오갈 때 73이 떨어졌고, 그 순간 모두들 경악했다. 소위 전장(戰場) 이탈. 76이 흑 ‘가’의 급소를 날려버린 역습의 강타였다.

82로 참고 2도 1로 이으면 12까지가 예상된다. 백으로선 1보다는 A에 돌이 있다는 게 낫다는 계산. 88까지의 응접은 당연하다. 여기서 다시 한 번 89라는 이해 못할 한 수가 터졌고 형세도 기운다. 평소의 이창호와는 너무도 다른,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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