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대국장

바둑 돌이 바람났다(?) 수백 년간 ‘사랑방’ 시절을 거쳐 근대화 이후 거의 한국기원 대국실에만 머물러 온 바둑 대국장에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 첨병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대회가 맥심배 입신 최강전. 8기째를 맞은 이 대회는 19일로 예정된 유창혁 대 박정상 간의 준결승 장소를 강원랜드 내 하이원 스키장으로 잡았다. 이 바둑이 끝나면 승자는 스키복을 벗어부치고 수영복을 챙겨야 할 판이다. 먼저 올라가 있는 이세돌과의 결승 3번기 제2국(2월 8일)이 괌 할리데이 리조트에서 치러지기 때문. 작년 결승 한판이 사이판서 거행된 데 이은 연속 ‘파격 행마’다.

맥심배는 오직 九단들에게만 출전이 허용되는 ‘제한 기전’. 전체 규모도, 우승 상금(2000만원)도 마이너급에 속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젊은 ‘입신(入神)’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올해엔 무려 38명이 참가했다. 노장 10여명만의 잔치로 치러지던 초창기의 장수 무대(?)가 단숨에 ‘신들의 전쟁’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 결과 주최측도 덩달아 신명이 난 것.

과거 바둑계엔 백두산 산상(山上)대국, 러시아 네바 강상(江上) 대국 등의 의욕적 행사가 시도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거의 맥이 끊긴 상태. 무채색의 칙칙하던 바둑돌이 ‘커피’에 의해 ‘스키장’과 ‘해수욕장’으로 진출하면서 색동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몇 곱이나 더 큰 덩치를 하고도 한국기원 울타리에 갇혀있는 대형 기전들에 자극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