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에 정통한 관계자 L씨를 만나 한국영화의 현실을 들어봤다. 익명을 요구한 L씨는 "올해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래서는 1~2년 후를 기약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재 영화의 기획과 투자, 제작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현업에서 느끼는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가.
▶당장 투자자들이 돈을 거둬들이고 있다. 90% 이상 제작해놓고도 마케팅 비용이 아까워서 그대로 사장시키는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지난해 한국영화의 저조한 수익률이 미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새로 투자를 받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지금도 도산 직전까지 몰린 제작사나 중소 배급사들이 일부 감지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건가.
▶작품당 수익률이 현저히 낮아진 반면 비용은 갈수록 늘어난 탓이다. 이래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어렵다. 소위 돈이 되는 작품만 좇다보니 영화적 장르의 다양성이 결여된 것도 문제다. 지난해 제작편수가 지나치게 증가하면서 작품의 전체적인 품질이 떨어진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
▶예를 들어 A사의 경우 지난해 한 작품에 50억원 이상 투자를 했다가 관객수가 100만 명에도 못미치는 흥행 참패를 겪으면서 전체 투자비의 70% 가량을 잃는 손해를 입었다. 다음 작품도 흥행성적이 시원치 않아 부채만 잔뜩 짊어진 채 위기를 맞았다. 또 어떤 작품은 대대적인 관객몰이를 위해 무려 300개의 프린트를 제작했지만 첫 주에 고작 1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친 후 부진을 면치 못했다. 프린트 한 벌 제작에 약 150만원이 든다. 300개면 4억5000만 원이라는 얘기다. 흥행에 실패할 경우, '프린트 비용도 못 뽑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영화의 판매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데.
▶지난해 11월 아메리칸필름마켓(AFM)에서 전조현상이 나타났다. 쉬쉬하고 있지만 당시 바이어들의 반응이 무척 냉담했다고 한다. 실제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 '디워'나 한국형 판타지 '중천' 등이 아직까지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올해인 것 같다. 방법은 없나.
▶스타마케팅이 소용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 입증됐다. 따라서 보다 풍부한 소재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몇몇 톱스타들의 개런티도 형평을 고려하거나 공동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메이저 배급사들의 부당경쟁, 제작사의 성급한 영화제작 등도 개선해야할 대목이다. 결국은 모든 영화인들이 각성해야 하는 문제다.
-올해 특별히 예상되는 변수가 있다면.
▶하반기엔 영화인노동조합이 출범할 예정이다. 할리우드처럼 스태프노조가 생겨나는 것이다. 스태프들의 권익 신장과 더불어 영화제작 비용이 상승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영화제작 시스템에 뭔가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제작환경은 더욱 위축될 수 있을 것이다. 사전 대비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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