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 기자의 촉촉한 시선] 거장도 오스카상 ‘6수생’

화요일(23일)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났을 때, 예순다섯 살 마틴 스코세지는 뭔가 일이 또 한 번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2년 전과 동일했다. 자신의 조폭 누아르 ‘디파티드’(The Departed)가 한 달 뒤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 5편 중 하나로 확정됐지만, 그 안에는 또 한 명의 익숙한 이름이 들어 있었다. 올해 일흔일곱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2차 대전을 그린 전쟁서사극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Zima) 역시 같은 곳에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원하지 않는 데자뷰였다. 2년 전 ‘에비에이터’(The Aviator)를 들고 시상식장인 LA 코닥극장을 찾았을 때, 스코세지는 애꿎은 나비 넥타이만 쓰다듬어야 했다. 똑같이 작품상 후보와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카데미의 심사위원단은 ‘밀리언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두 개의 트로피를 몰아줬다. “아카데미를 위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지만,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현역 감독 중 미국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대부분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스코세지는 지금까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다섯 번 노미네이트되어 단 한 번도 상을 타지 못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 노미네이트. ‘성난 황소’(1981),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9), ‘좋은 친구들’(1990), ‘순수의 시대’(1994), ‘갱스 오브 뉴욕’(2003), ‘에비에이터’(2005)는 모두 그의 자랑스런 자식들이었지만, 그때마다 철저히 외면당했다.

호사가들은 열흘 전 열린 골든글로브 감독상 수상을 예로 들며 스코세지가 한 발자국 앞섰다고 재바르게 쑥덕거렸다. 이 상이야말로 아카데미의 풍향계 아니냐면서. 하지만 4년 전 ‘갱스 오브 뉴욕’때도 골든글로브 감독상만 받고 정작 아카데미에서는 물을 먹지 않았던가. 그에게 쏟아지는 위로의 스포트라이트도 부담이다. 올해 16개 부문 후보들을 아무리 들춰봐도 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없다고 투덜대는 할리우드 연예지들은 “단골 감초” 운운하며 그의 이름을 들먹거린다. 여기에 팔순을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여전히 정력적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행보야말로 가장 큰 부담이다. 원래 다음 달 9일에야 미국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아카데미를 염두에 둔 이 노장의 요청으로 지난해 12월 20일 당겨서 개봉했다. 한 번 정한 개봉순서 바꾸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할리우드지만, 메이저 배급사인 워너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2년 전 ‘밀리언 달러 베이비’도 이 노인네의 고집으로 개봉 순서를 12월로 당겼었는데. ‘용서받지 못한 자’(1993)까지 합치면 벌써 2개의 감독상과 작품상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데. 데자뷰는 현실이 될까. 아카데미의 트로피는 오는 2월 25일 자신의 주인을 결정한다. (이 칼럼은 아카데미에 대처하는 스코세지 감독의 불안한 자세를 바탕으로 유머를 섞어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