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LG배 세계기왕전] 만천과해(瞞天過海)

〈제9보〉(118~137)=9분여의 장고 끝에 118로 일단 따내고 나니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하다. 이것으로 우변 흑이 난처해 보인다. 하지만 흑은 불문곡직 121로 우지끈 끊었고, 백도 무슨 소리냐는 듯 122로 나간다. 프로의 바둑에서 이런 직선적인 행마를 구경하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다. 어느 한쪽이 착각한 것은 아닐까.

131까지 쌍방 기호지세. 132에서 백의 의도가 확실하게 드러났다. 136까지 중앙 백을 버림돌로 우변 곤마를 도강(渡江)시키는 데 성공한 것.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그렇지 않다. 아래쪽 여섯 점은 이미 잡혀있던 돌이니 사석(捨石)은 위쪽 다섯 점뿐이다.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너는(瞞天過海) 손자 병법 승전계(勝戰計) 그대로다. 쌍방 모두 착각 따위는 없었다.

수순 중 132는 주의를 요한다. 깜빡 참고도 1쪽에서 단수를 쳤다간 2로 빠져 10년 적공 나무아미타불이 되는 것. 다음 전장(戰場)이 어디로 옮겨갈 것인가 주목되는 가운데 흑 137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흑에게 좌하귀는 버려진 폐허에 불과했었다. 그 잿더미 속에서 한 송이 화사한 장미 꽃을 건져 올리는 묘기를 감상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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