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관람가에도 욕설 난무하는 한국영화 문제 없나

필요이상 많이 등장… 조폭영화 아예 육두문자 퍼레이드

한국영화에 욕이 넘쳐난다.

영화 '마파도2'는 거침없는 욕설로 서막을 연다. 동백섬으로 떠나는 배가 풍랑에 휩쓸리자 충수(이문식)는 선장 조형기에게 실감나는 육두문자를 날린다. "니X X발", "X같은…"

섬에서는 할머니들의 욕설 러시가 시작된다. 욕설의 클라이맥스는 진안댁(김수미)이 만들어낸다. 뭍에 나갔다 영화 말미에 돌아온 진안댁은 충수에게 수십초간의 욕설행진을 펼친다. "X발놈, XX럴놈, X만한 놈, X새끼야"로 이어지는 연속공격을 뿜어낸다. 이 영화는 12세 이상 관람가였다.

역시 12세 이상 관람가였던 '괴물'에서도 욕설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강두(송강호)가 병원을 탈출했다 잡혀와 바이러스 오염검사를 받을 때 이렇게 외친다. "헛X랄 그만하고 이 X발것들아... 있지도 않은 걸 이 개X랄을!"

조폭영화는 조폭의 거친 언어를 그대로 담아낸다. 15세 이상 관람가인 '조폭마누라3'에서 기철(이범수), 꽁치(오지호)는 쌍시옷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조직원 사이에서 티격태격 하면서 '에이 X발, X발놈'등을 연발한다. 자신들의 무서움을 과시하기 위해 아령(서기)을 위협하는 장면에서도 여지없이 'ㅆ'들을 뿜어댄다.

'거룩한 계보'에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주중(정준호)에게 배신을 당한 치성(정재영)은 "모든 X벌놈들을 내가 다 만나러 간다고"라며 절규한다. 이외에 "아따 X벌", "X벌놈들, 드럽게 시끄럽게 쳐묵네" 등 대사 하나에 욕설, 비속어가 꼭 등장한다. 이 역시 15세 이상 관람가의 조폭영화였다.

욕설이 단어에서 문장으로 확대되는 경우도 있다. 영화배우 이문식은 '황산벌'을 비롯한 다수의 출연작에서 "X발, 창자를 꺼내서 줄넘기를 해버린다"라고 했다. 이 표현은 한국영화의 욕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됐다.

영화를 하나의 예술로 생각한다면 시에 '시적 허용'이 있듯이 영화에도 '예술적 허용'이란 이름으로 욕설을 관대하게 용인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욕이 많이 등장한다는 게 많은 관객들의 지적이다.

가족영화에서는 '예술적 허용'의 폭이 커서는 안된다. 할머니들의 욕은 조폭들의 욕과 달리 정감있게 들릴 수 있지만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로 보기엔 그 정도를 넘어선다. 초등학교 6년의 아들을 둔 김영순씨(41)는 "가족끼리 '괴물'을 재미있게 관람했지만 욕설이 자주 등장해 민망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폭영화의 경우 리얼리티를 이유로 지나치게 자주 욕설을 사용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회사원 손정빈씨(31)는 "조폭영화의 빈번한 욕설은 거부감을 준다"고 말했다.

[욕 문제점] 스크린 언어 청소년 모방 우려

영화계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을뿐"

한국영화에 욕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엔 12세 이상 관람가에도 욕설이 침입하기 시작해 '마파도2','괴물'(이상 12세 이상 관람가) 등의 영화에도 쌍시옷자를 동반한 욕설이 난무했다.

영화 속 욕설의 가장 큰 문제는 청소년 모방이다. 서울 아현중학교 국어교사 송순주씨(29)는 "영화 '친구'가 유행했을 때 욕설과 폭력적인 언어를 학생들이 그대로 따라했다. '비열한 거리'가 개봉한 후엔 '땡벌'이란 노래와 조폭들의 사투리 욕설이 크게 유행한 바 있다"며, "특히 '늑대의 유혹'처럼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경우, 대사 속 욕설이 주는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고 우려했다.

중년층에게도 과도한 욕설은 불편하다. 마포구에 사는 김정숙씨(47)는 "예전보다 영화에 자극적인 욕설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 그런 욕설이 영화에 꼭 필요한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순화된 영화 언어에 익숙한 중년층에게 'X발, X같다' 같은 욕이 난무하는 스크린은 생소할 수밖에 없다.

한편 영화계는 영화가 현실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욕설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뚝방전설'의 조범구 감독은 "욕설은 등장인물이 처한 어두운 상황을 효과적으로 반영한다"며 "'괴물'의 남일이 좋은 예"라고 언급했다. 남일의 신분은 대졸 백수. 학창시절 학생운동에 매진했지만 지금은 9만명 청년백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 감독은 "경기악화로 피폐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영화도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독','서프라이즈'의 시나리오 작가 변원미씨는 "한때 욕을 한마디도 안했다는 이유로 고교 남학생들이 방송에서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그만큼 욕설이 생활화됐다. 영화 속 욕설은 영화가 삶을 그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욕 등급기준] 기준있지만 세부내용없어 애매모호

영화의 관람 등급은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담당하고 있다.

영등위는 '영화 및 비디오물 등급분류 기준'에 의거, 영화에 대한 등급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등급 분류는 다섯 가지로 나뉜다. 전체관람가, 12ㆍ15ㆍ18세 이상 관람가, 그리고 제한상영가다.

영등위가 대사에 대해 적시하고 있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전체관람가 ▶사회적으로 일반화된 비속어라도 남용되지 않고 순화되어야 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대인 관계 및 교육과정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대사이어야 하며 비속어는 절제, 순화되어야 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12세와 같되 저속한 욕설, 비방, 성적인 묘사는 절제되어야 한다.

18세 이상 관람가 ▶정서적으로 적절하지 않는 수준의 저속한 욕설ㆍ비방ㆍ성적인 언어 사용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것.

제한상영가 ▶사회적 취약 계층 집단에 대한 경멸적 용어를 과도하게 사용,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현저하게 손상하는 것.

기준은 있지만 다소 애매모호하다. 세부적인 내용은 없고 주관적인 표현들로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욕설에 대한 세부적인 조건을 정립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같은 욕설이라도 영화의 장르, 주제, 그리고 내용에 따라 등급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령 정감어린 욕쟁이 할머니의 욕과 악인의 악의적인 욕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 Copyrights ⓒ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