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 록키 발보아

20살 때쯤이었다. 대학 개강파티가 한창 ‘고성(高聲)파티’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불청객이 떼로 몰려들었다. 당시 ‘노땅’이라고 불리던 나이 지긋한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노래방을 점령한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른 즈음에’를 열창했고, 후배들은 “뭐야, 다들 웬 궁상…”이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뒤, 그 노래는 어느새 입 속을 멤돌게 됐다.

최근 만난 영화 ‘록키 발보아’는 ‘서른 즈음에’ 같은 노래였다. 물론 그 서른을 두번 거듭해, 올해 환갑에 접어든 ‘록키’역의 실베스타 스탤론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슴 저편에 야수가 살아 있는 ‘록키’는 ‘실베스타 스탤론’ 그 자체였고, 영화 속 그를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록키 발보아(12세 이상 관람가)’는 록키 시리즈의 완성편. 1976년 무명의 실베스타 스탤론이 각본, 주연을 맡은 ‘록키1’편의 성공 이후 5편까지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는 꼭 ‘록키 1편’의 ‘30년 후’를 보는 것 같다. 주름이 자글한 처남(버트 영)의 얼굴에서 처연한 세월감이 도드라진다.

은퇴 이후, 몇년 전 죽은 아내의 이름을 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록키는 손님들에게 왕년의 무용담을 늘어놓고, 과거를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유명한 아버지를 부담스러워하는 아들(밀로 벤티미글리아)과의 관계는 서먹하기만 하다. 그러다 한 TV프로그램에서 자신과, 현 헤비급 챔피언이지만 인기는 최악인 메이슨 딕슨의 가상 경기 중계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끓어오르는 ‘야수’ 기질에 그는 다시 링에 오른다. 익숙한 주제가가 추억을 살릴 때쯤, 유명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씬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 영화는 요즘 흔히 나오는 음모나, 반전, 에로 모두 찾기 힘들다. 뻔한 줄거리에, 실제 격투장면 역시 짐작 가능하다. 하지만,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가슴을 따라 돋아있는 울퉁불퉁한 핏줄에 넋을 잃게 되는 순간, 정육점 냉동실 고기를 샌드백 삼아 주먹을 날리는 장면에 반가워하는 순간, 마음 깊은 저편 무언가가 용솟음 치기 시작한다.

인생은 ‘4각의 링’과 닮아있다. 서로에게 난타전을 날리거나, 혹은 줄창 방어만 해대는 동안 어느새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 록키는 되뇌인다. “인생은 얼마나 성공적으로 사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