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벽 수문장’이창호 화려한 부활

이창호(32)가 ‘철벽 수문장’으로 복귀했다.

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후아팅 호텔서 폐막된 제8회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국으로 벌어진 한·중 주장전서 흑을 쥔 이창호 九단은 중국 구리(古力·24) 九단을 277수 만에 2집 반 차로 눌렀다. 대회 초반 위기에 빠졌던 한국이 박영훈(22)의 4연승으로 역전의 발판을 만든 뒤 이창호의 막판 수훈에 힘입어 대 역전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역시 이창호였다. 국가 대항 연승전서 특히 눈부신 활약을 보여온 이창호는 이번에도 마지막 순간 중국 2위 랭커 쿵제(孔杰)와 톱 스타 구리를 연파, 극적 뒤집기를 연출했다. 2년 전 같은 무대서 혼자 중국과 일본 기사 5명을 모조리 눕히며 펼쳤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분전이었다. 4시간 가까운 사투를 승리로 장식하면서 이 대회 ‘단골 주장’ 이창호의 총 성적표는 16승 1패가 됐다. 지난해 국가 연승전 사상 첫 실족과 함께 패권을 일본에게 내주었던 아쉬움을 일거에 날려보낸 것. 한국 바둑은 이로써 농심배의 전신(前身)인 진로배 등을 포함한 14년간의 국가 연승전서 13회를 우승하는 위업도 세웠다.

이창호의 맹활약이 최근의 극심한 부진 속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화제다. 올 들어 그가 삼성화재배 결승서 중국 창하오(常昊)에게 영패하는 등 시즌 초 1승 4패까지 내몰리자 바둑계는 장기간 정상을 지켜온 데 따른 ‘권태설’, 결혼을 해야 안정을 찾는다는 ‘노총각 슬럼프설’ ‘가정 우환설’ 등 갖가지 진단과 처방을 내놓던 터였다. 중국측조차 한국 팀에 이창호 1명만 남자, “요즘 이창호는 무섭지 않다”라며 우승을 떼놓은 당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현지 도착 후 소화 불량 증세를 보이던 이창호는 그러나 막상 대국이 시작되자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기량과 투혼으로 또 한 번의 ‘신화’를 추가한 것. 인터넷으로 이날 바둑을 해설한 목진석 九단은 “최근 중국의 위세에 움츠렸던 한국 기사들이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