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어떤 영화 볼까

‘한영화’씨의 얇은 귀는 태어날 때부터 홀쭉했다. 그 탓에 줏대 없다는 소리도 숱하게 들었지만, 대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칭찬도 그 못지 않게 들은 편이다. 설 명절 ‘메이저 영화’ 10편의 완전정복을 노리는 영화씨를 네 글자 이름 영화마니아들이 ‘선점’하러 뛰어들었다. 그들의 닉네임은 ‘연기 지존’ ‘눈물 바다’ ‘포복 절도’ ‘명랑 가족’.

●눈물바다｜“한 편만 꼽으라면 뭐니뭐니 해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버지의 깃발’이지. 2차대전 당시 미군과 일본군이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이오지마 전투를 이렇게 가슴 먹먹하게 그려낸 작품은 없을 거야. 인공적 감동이 아니라, 삶의 이면에서 온 눈물이기 때문에 더욱 진하군.”

●포복절도｜“에이, 그래도 난 2년 전 같은 감독의 ‘밀리언달러 베이비’보다 못하던걸. 전투 장면도 너무 잔인하기만 하고. 더구나 이번에는 일본인의 시각으로 찍은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까지 함께 봐야 진정한 그림이 완성된다며? 복잡해, 복잡해. 명절에는 뭐니 뭐니 해도 코미디야. 임창정·하지원 콤비의 휴먼코미디 ‘1번가의 기적’, 차태현의 코믹멜로 ‘복면달호’, 김혜수·윤진서의 불륜 소동극 ‘바람피기 좋은 날’, 신현준·최성국·권오중 트리오의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무려 네 편이야. 허술한 구석이 조금씩 있지만, 우리 코미디 신도들에게는 행복할 따름이지.”

●연기지존｜“양만 많으면 뭐하나. 난 다 그저 그렇더구만. 3류 조폭이 휩쓸던 예의 그 허섭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반대로 웃음의 강도도 분명히 약해진 게 사실이야. 그런 면에서 차라리 연기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더 퀸’의 헬렌 미렌을 보라고.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하는 이 환갑의 여배우를 보고 있으면 경이로움까지 느껴져. 오스카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면 이 작품으로 받는 여우주연상만 26개야.”

●눈물바다｜“에이, 영국 왕실 이야기가 우리에게 뭐 친밀감이 있나. 연기는 대단한 지 모르겠지만 우리 현실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 또 하나 강력추천 영화가 있어. 바로 실버스타 스탤론의 ‘록키 발보아’지. 처음에는 나도 환갑 넘은 그 양반 노망났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어. 이건 완전히 ‘브라보 마이 라이프’라고. 승리보다 대결 그 자체에 의미를 둔 록키를 보면서, 나도 은퇴는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니까.”

●연기지존｜“아무리 그래도 실버스타 스탤론의 연기는 오버야. 차라리 ‘그놈 목소리’에서 설경구의 연기가 훨씬 살아있지. 영화 마지막의 그 처절한 절규는 또 어떻고.”

●포복절도｜“유괴범 잡겠다는 좋은 취지를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난 그래도 ‘그놈 목소리’가 불편해. 상업영화에는 상업영화의 문법이 있는 거라구. 또 영화적 테크닉도 너무 허술해. 솔직히 돈 7000원 내가면서 일부러 명절에 우울한 기분 들기는 싫다니까. 차라리 교훈은 없더라도 섹스 코미디 ‘바람피기 좋은 날’은 가벼운 재미라도 있지.”

●명랑가족｜“노(no). 명절에 가족들하고 볼 영화는 아니지. 차라리 다코타 패닝이 주연한 ‘샬롯의 거미줄’과 신비의 숲에서 벌어지는 판타지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가 최고야. 전체 관람가라구. 초등학교 아이들 데리고 가려면, 이 영화들 말고는 없어. 부모들은 조금 지루할 지 모르겠지만 말야.”

●한영화｜“그런데 솔직히 예년 명절에 비해서 영화들의 중량감은 좀 떨어지는 것 아냐? 그건 그렇고, 10편 다 보려면 이번 설 연휴 3일은 너무 짧군. 분신술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