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영화의 힘 보여주겠다”

“(오스카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봐요. 그리고 내 삶에는 아직 오스카보다 더 중요한 게 많습니다.” 히스패닉 특유의 경음 섞인 영어에 겸손과 부담이 묻어 있다. 오는 25일 열릴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강력한 작품상·감독상 후보로 꼽히는 멕시코 출신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44) 감독을 21일 전화 인터뷰했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 칭찬을 해준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상은 정말 운이 좋아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도 “물론 받게 되면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지만…”이라고 말을 흐렸다.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냐리투는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2000)로 칸 영화제에서 “천재 감독” 소리를 들었고, 할리우드에서는 숀 펜, 나오미 와츠(21그램), 브래드 피트, 케이트 블란쳇(바벨) 등 톱스타가 기꺼이 출연을 자원할 만큼 인정받은 감독. 총 7번 노미네이트된 이번 작품 ‘바벨’은 모로코 사막에서 총에 맞은 미국인 부부를 통해 현대인의 소통 가능성을 질문하는 영화다. 그는 “인생, 시간, 국경, 테러리즘, 열정 등의 화두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느 정도로 소통이 어려운지를 말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 ‘바벨’은 멕시코 출신인 감독의 자의식을 녹여 넣은 작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이냐리투 감독은 지난달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받은 뒤, “놀라실 (미국) 공무원 여러분, 맹세하건대 (이민) 서류는 빠짐없이 제출했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뼈 있는 농담으로 수상 소감 첫머리를 장식한 바 있다. 그때 일을 상기시키자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 ‘바벨’에 등장하는 접경지대에서만 하루 1000명 이상의 멕시코인들이 국경을 넘는다”면서 “미국에 와서 사는 멕시코인으로서 이 현실을 모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들이 느꼈던 고통을 나도 느꼈다”고 말했다.

같은 멕시코 출신인 영화감독 알폰소 쿠아론, 델 토로와 함께 그는 ‘멕시코 3총사’로도 불린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들 3총사는 무려 16회나 노미네이트되면서 “멕시코 영화의 힘”을 보여준 바 있다.

이냐리투 감독은 “우리끼리는 만나면 오스카 이야기보다는 우리의 인생,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