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입력 : 2007.02.22 09:17
백영옥의 '트랜드샷'
인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바라나시에 있을 때, 긴 여행의 여독으로 배낭족들 사이에서 일명 ‘바라나시병’ 이라 불리던 설사를 동반한 지독한 몸살에 걸리고 말았다. 덕분에 어떤 것도 넘길 수가 없었다. 나는 한 동안 푹 익은 바나나로 연명했다.
온종일 화장실에서 먹은 걸 게워내고 나면 바나나를 들고 갠지스 강이 훤히 보이는 숙소 옥상에 올라가 화장터 연기로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꽤 처연하고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설사병 걸린 여자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궁둥짝이 유난히 빨간 원숭이와 싸우다가 (바라나시엔 도둑 원숭이들이 진짜 많다) 끝내 바나나를 빼앗겨 버렸다는 얘기니까.
그때 나와 같은 곳에 머물던 한 장기 체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지나가는 말처럼 내게 영화배우 이은주가 죽었다는 얘길 했다. 인도엔 인터넷 카페가 많아서 한국 소식을 아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녀가 죽고 나서 일주일이나 흐른 뒤 그 얘길 들은 것이다. 이은주를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 바나나를 빼앗긴 게 서럽고, 이 여행이 힘들고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아플 때 갠지스 강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나무 살 돈이 부족해 죽어서도 재가 될 수 없는 가난한 몸뚱아리들이 갠지스 강 아래로 둥둥 떠내려 오는 게 제일 먼저 보였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라는 갠지스에서 처음 타다 만 시신들이 흘러 내려오는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기겁했었다. 하지만 나중엔 그런 가련한 영혼들만 봐도 심장이 다 덜컥거렸다. 이은주는 2년 전 오늘(2월 22일), 그렇게 떠났다.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던 날, 정다빈이 죽었단 얘길 들었다. “진짜야? 아니 왜?” 멍했다. “일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울증이 있었고…” 친구는 기사를 읽다가, 충격적인 다음 기사도 읽어주었다. 안나 니콜 스미스 돌연사. ‘아들을 잃은 슬픔이 이 포르노 스타에겐 견딜 수 없는 자책감으로…’로 시작하는 기사였다. 유니의 썰렁한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비정한 가요계를 지탄하던 김진표의 기사를 읽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두 명이나 되는 배우들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나의 요가 구루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초심은 인간이 가진 마음 중에 가장 강한데, 바로 그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의미심장한 얘길 해주었다. “예전에 어떤 남자가 늘 죽고 싶다란 말을 했었어요. 어찌나 죽고 싶단 말을 자주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이 다 심란할 정도였는데 전 그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경우, 바로 그 ‘죽고 싶다’라는 한 가지 마음으로 죽어라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83살까지 살았어요. 매일 죽고 싶다, 고 외치면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라도 꼭 잡고 있으면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역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죽어라 열심히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남이란 글자에 점 하나 빼면 님이라는 글자, 라는 소리도 유행가 가사에만 나올법한 얘긴 아닌 것이다. 최근 한 부장판사는 자살하고 싶다는 피고인에게 자살이란 말을 열 번만 외쳐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가 말미에 했다는 말도 이런 것이다. 자살을 외치다 보니 살자 같지 들리지 않느냐고 말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난 후의 삶을 다룬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에 보면 주인공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맨발로 풀밭에 서서 하염없이 비를 맞는 것이다. 그 다음 여자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적어 실행에 옮긴다. 재밌는 건 솔로몬의 판결을 내린 그 판사가 피고인에게 줬다는 책 역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어서 꼭 해야 할 49가지 일’ 따위의 책이 나올 리 없는 것과 똑같다.
안나 니콜 스미스가 죽자 미국에선 곧 그녀의 죽음과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연결시키는 기사가 나왔다. 더 황당한 건 최근에 자신이 그녀 딸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다섯 번째 생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스타의 죽음 앞에 생부라고 주장하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등장한 것도 웃기고, 다른 스타의 죽음 앞에 악플을 달아놓는 ‘것’(악플러)들도 웃긴다. 어쨌든 지금은 그들을 애도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만큼은 이 칼럼명이 정말 ‘트렌드 샷’ 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소설가)
온종일 화장실에서 먹은 걸 게워내고 나면 바나나를 들고 갠지스 강이 훤히 보이는 숙소 옥상에 올라가 화장터 연기로 자욱한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꽤 처연하고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요컨대 설사병 걸린 여자가 한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를 뺏기지 않기 위해 궁둥짝이 유난히 빨간 원숭이와 싸우다가 (바라나시엔 도둑 원숭이들이 진짜 많다) 끝내 바나나를 빼앗겨 버렸다는 얘기니까.
그때 나와 같은 곳에 머물던 한 장기 체류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지나가는 말처럼 내게 영화배우 이은주가 죽었다는 얘길 했다. 인도엔 인터넷 카페가 많아서 한국 소식을 아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녀가 죽고 나서 일주일이나 흐른 뒤 그 얘길 들은 것이다. 이은주를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마 바나나를 빼앗긴 게 서럽고, 이 여행이 힘들고 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몸이 아플 때 갠지스 강을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나무 살 돈이 부족해 죽어서도 재가 될 수 없는 가난한 몸뚱아리들이 갠지스 강 아래로 둥둥 떠내려 오는 게 제일 먼저 보였다.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라는 갠지스에서 처음 타다 만 시신들이 흘러 내려오는 그 광경을 보고 나는 기겁했었다. 하지만 나중엔 그런 가련한 영혼들만 봐도 심장이 다 덜컥거렸다. 이은주는 2년 전 오늘(2월 22일), 그렇게 떠났다.
술을 마시고 늦게까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 있던 날, 정다빈이 죽었단 얘길 들었다. “진짜야? 아니 왜?” 멍했다. “일이 없어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울증이 있었고…” 친구는 기사를 읽다가, 충격적인 다음 기사도 읽어주었다. 안나 니콜 스미스 돌연사. ‘아들을 잃은 슬픔이 이 포르노 스타에겐 견딜 수 없는 자책감으로…’로 시작하는 기사였다. 유니의 썰렁한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비정한 가요계를 지탄하던 김진표의 기사를 읽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사이 두 명이나 되는 배우들이 저 세상으로 가버린 것이다.
처음 요가를 배울 때 나의 요가 구루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초심은 인간이 가진 마음 중에 가장 강한데, 바로 그 초심을 잃지 말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내게 의미심장한 얘길 해주었다. “예전에 어떤 남자가 늘 죽고 싶다란 말을 했었어요. 어찌나 죽고 싶단 말을 자주 하는지 옆에 있는 사람이 다 심란할 정도였는데 전 그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경우, 바로 그 ‘죽고 싶다’라는 한 가지 마음으로 죽어라 ‘살았기’ 때문이에요. 그는 83살까지 살았어요. 매일 죽고 싶다, 고 외치면서.”
죽고 싶다는 마음이라도 꼭 잡고 있으면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역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죽어라 열심히 산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가. 남이란 글자에 점 하나 빼면 님이라는 글자, 라는 소리도 유행가 가사에만 나올법한 얘긴 아닌 것이다. 최근 한 부장판사는 자살하고 싶다는 피고인에게 자살이란 말을 열 번만 외쳐보라고 했다고 하는데, 그가 말미에 했다는 말도 이런 것이다. 자살을 외치다 보니 살자 같지 들리지 않느냐고 말이다.
시한부 삶을 선고받고 난 후의 삶을 다룬 영화 ‘나 없는 내 인생’에 보면 주인공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은 맨발로 풀밭에 서서 하염없이 비를 맞는 것이다. 그 다음 여자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적어 실행에 옮긴다. 재밌는 건 솔로몬의 판결을 내린 그 판사가 피고인에게 줬다는 책 역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라는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죽어서 꼭 해야 할 49가지 일’ 따위의 책이 나올 리 없는 것과 똑같다.
안나 니콜 스미스가 죽자 미국에선 곧 그녀의 죽음과 마릴린 먼로의 죽음을 연결시키는 기사가 나왔다. 더 황당한 건 최근에 자신이 그녀 딸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는 다섯 번째 생부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 스타의 죽음 앞에 생부라고 주장하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등장한 것도 웃기고, 다른 스타의 죽음 앞에 악플을 달아놓는 ‘것’(악플러)들도 웃긴다. 어쨌든 지금은 그들을 애도해야 할 시간이다. 오늘만큼은 이 칼럼명이 정말 ‘트렌드 샷’ 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