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편견을 깨다

겉으로는 4관왕의 영화 ‘디파티드’의 승리였지만, 이날 영광의 진정한 주인공은 스스로의 편견을 깬 오스카였다. 국가, 인종, 자본, 나이, 성적 취향, 심지어 징크스까지.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25일(현지 시각) 미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은 ‘벽’이 무너지는 소리로 가득찼고, 행사가 끝난 할리우드 대로는 다양한 인종의 시민들이 지르는 환호로 떠나갈 듯했다.

촬영상, 미술상 등 기술부문 4개 상을 두 편의 멕시코 영화 ‘판의 미로’(3관왕·기예르모 델 토로)와 ‘바벨’(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이 휩쓸 때부터 분위기는 감지됐다. 일본어로 만들어져 골든글로브에서는 외국어영화상에 국한됐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음향편집상을 받았고, 단편 다큐·단편 애니메이션·단편 실사영화상은 각각 중국, 캐나다, 팔레스타인 감독의 몫이었다. 외국어영화상을 제외하면, 전체 23개 부문 중 9개의 트로피가 미국 이외의 국가, 혹은 다국적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여성 동성애자로 사상 첫 시상식 사회를 보며 ‘전통적 아카데미’를 뛰어넘은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DeGeneres)는 “역사상 가장 다국적인 오스카”라며 이날을 찬양했다.

피부색, 나이에 대한 편견도 깨졌다. 연기부문 4개 트로피 중에서 절반은 흑인 배우에게 돌아갔다. 제니퍼 허드슨(Hudson·‘드림걸즈’·여우조연상)과 포레스트 휘태커(Whitaker·‘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남우주연상)는 ‘백인들의 할리우드 잔치’라는 편견을 깼고, 올해 일흔 셋인 노배우 앨런 아킨(Arkin·‘리틀 미스 선샤인’·남우조연상)과 환갑을 넘긴 헬렌 미렌(Mirren·‘더 퀸’·여우주연상)은 스타 후배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디파티드’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800만달러(약 72억원)로 만든 ‘리틀 미스 선샤인’(각본상 등 2관왕)은 자본의 벽마저도 돌파했다. 감독상만 6번째 도전한 마틴 스콜세지(Scorsese·‘디파티드’)는 ‘오스카 징크스’를 후련하게 깨버렸다.

이처럼 유례없는 ‘다국적 오스카’는 최근 몇 년간 상상력의 한계에 갇혀 해외 영화인 수혈로 명성을 이어가던 할리우드가 아예 공식적으로 ‘이종 교배’를 선언했음을 의미한다.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라는 이유로 수상이 의문시됐던 ‘디파티드’가 이날 작품상·감독상등 핵심 4개 부문 트로피를 받으며 영예를 누린 것은 그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