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를 베어라'(감독 민병훈, 제작 영화공간)는 분명 쉽지 않은 영화다. 러시아 유학파 출신인 민병훈 감독의 '두려움 3부작' 중 완결판으로, 가톨릭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데서부터 만만찮은 기운이 느껴진다.
한데 이 영화를 한참 감상하다 보면 정말 졸지 않았는데도, 깜짝 놀라 눈을 비비게 된다. 다른 역할을 맡은 똑같은 외모의 여배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경우 혼란은 더해진다.
바로 이 1인2역의 주인공이 신예 이민정(24)이다. 이민정은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 주인공 수현(서장원)의 헤어진 여자친구 수아와 수녀 헬레나 역을 동시에 맡았다. 수아는 구도의 길을 가려는 수현에게 끊임없는 죄책감과 번민을 주는 인물인 반면, 헬레나는 수현으로 하여금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가 주려고 하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일 뿐더러, 각기 다른 모습을 연기해야 하기에 출연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민정은 되레 이같은 점 때문에 과감히 도전했다고 말했다. "연기생활 동안 언제나 1인2역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힘든 만큼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출연하기로 했죠."
당찬 성격만큼 성장도 빠르다. 원래 연출을 전공하려고 대학(성균관대 연기예술학부)에 입학한 탓에 연기를 늦게 시작한 편이다. 그래서 나이에 비해 출연작도 썩 많지 않다. 제대로 배역을 맡아 연기답게 한 영화는 '포도나무를 베어라'가 사실상 처음일 정도.
그러나 아침드라마 '있을때 잘해'(MBC)에서 주인공 하동규(김윤석)의 동생 하정화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더니, '포도나무를 베어라'에서도 신인답지 않은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이제 슬슬 규모가 큰 작품에서 대중적 인기를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들 법 하다. 하지만 이민정은 당최 욕심을 내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모습이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작품에 대한 호평과 어울리지 않게 22일 전국 6개관에서 소박하게 개봉됐다. 젊은 마음에 서운할 것도 같다. 그래서 '안타깝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히려 질문이 무안해질 정도로 어른스런 대답이 돌아왔다.
"전 아직 관객 숫자를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배우로서 저 자신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죠."
올해 목표가 좋은 작품을 2개 이상 한다는 욕심이지만, 그녀는 소박하고 차분하게 자신만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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